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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전주국제영화제 리뷰] 돌아온 구구시(Googoosh - Made of Fire)

by 박댐 2025. 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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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국제영화제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돌아온 구구시 포스터

전주국제영화제 ‘프론트라인’ 섹션에서 상영된 닐루파르 타기자데 감독의 다큐멘터리「돌아온 구구시」는 이란의 전설적인 가수 구구시(Googoosh)의 삶을 통해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과 그 여파로 생겨난 디아스포라 커뮤니티의 집단 기억을 따라간다. 단순한 인물 전기가 아니라, 음악과 망명, 억압과 저항, 정체성과 회복의 교차점에 선 한 여성을 통해 오늘날 이란의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한다. 

나는- 당연하게도-이란 음악에 대해서 잘 몰랐지만, 구구시는 1960~70년대 이란 대중문화를 대표했던 슈퍼스타였다. 페르시아어뿐만 아니라 프랑스어, 영어 등 다양한 언어로도 노래했던 그녀는 당대의 대중예술을 국제적인 무대에 올려놓은 상징적 인물이다. 유럽의 레코드 레이블과 함께 실제로 유럽에 진출하려는 레코드를 발매하기도 했다. 그러나 1979년 이란의 이슬람 혁명 이후, 그녀의 음악은 '부도덕하다'는 이유로 금지당하고, 그녀는 무려 21년간 침묵을 강요당했다. 이란은 혁명 이후 여자 공연자들의 활동을 크게 제한했고, 구구시는 그 후 21년동안 무대에 오르지 않고 활동을 중지한채로 살아간다. 

이란이 아닌 외국에서 공연을 할수 있게 허락받은 구구시는 2000년에 해외에서 무대에 다시 오른다. 당연하게도 이슬람 혁명 이후 구구시의 모든 음악과 활동들은 이란 내에서 금지되었는데, 구구시와 동세대를 살아가지 않았던 젊은 이란인들과 해외의 이란계 디아스포라 인구들은 알음알음 구구시의 음악을 듣고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콘서트에서 젊은 이란 여성들이 울면서 그녀의 음악을 따라부르는 장면들이 영화에서도 보이며, 구구시는 이슬람 혁명 이후 계속된 이란 이슬람근본주의 정부의 여성 탄압에 대해서 꾸준히 목소리를 낸다. 그녀의 음악은 그 자체로 억압에 맞서는 목소리이자, 디아스포라 이란인들에게는 고향과 가족, 돌아가신 부모님 또는 조부모님들이 들었던 추억의 음악으로 기능하며, 일종의 정서적 연결 고리가 된다.

https://youtu.be/zl0DbMYb0JY?si=k3wExh_c9k-zizUJ

약 20년간의 침묵을 뒤로 하고 해외에서 열린 구구시의 첫 콘서트. 토론토에서 열렸고, 콘서트 영상 전체가 유튜브에 올라와있다. 

영화는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주도한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이란이 어떻게 자유를 약속하면서도 반대로 수많은 자유를 억압하는 신정 체제로 변해갔는지를 설명한다. 여성들은 히잡 착용을 강제받았고, 서구적 문화와 예술은 타락으로 간주되었다. 수많은 예술가, 지식인, 반체제 인사들이 이란을 떠났고, 전 세계로 흩어지며 거대한 디아스포라 커뮤니티를 형성하게 된다.

구구시는 그 시대 억압의 중심에 있던 대표적인 인물이다. 영화는 그녀의 침묵이 단지 개인적인 비극이 아니라, 이란 사회 전체의 예술과 표현의 자유가 붕괴된 사건이었음을 강조한다. 이란 혁명 이후 망명한 이들은 현재 미국, 캐나다, 유럽 등지에서 약 500만 명에 이른다. 이들은 언어와 문화를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고, 구구시의 음악은 그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존재로 남아 있다. 영화 속 인터뷰는 구구시가 단순한 음악가가 아니라, 디아스포라 커뮤니티의 감정적 구심점이라는 점을 부각시킨다. 디아스포라 2세대에게도 구구시는 ‘모국 이란’과 연결되는 하나의 실존적 상징이다. 억압적인 고향에 대한 사랑과 분노, 복잡한 감정을 한데 담고 있는 그녀의 노래는 단순한 향수가 아닌, 저항과 소속감의 이중 언어다.

구구시는 비록 해외에 있지만 이란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인권 억압에 대해서 꾸준히 목소리를 내고 있다. 영화에서도 2022년도에 발생한 이란 시위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데, 이 시위는 이란의 종교경찰(도덕경찰)이 한 여성이 제대로 히잡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한 이후 의문사 해버린 것에서부터 비롯된 시위이다. 비록 이제는 나이도 많이 들었고, 애초에 투사나 시민운동가도 아니지만, 꾸준히 이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발언하고 디아스포라 커뮤니티 내에서 활동을 하는 것을 보면서, 다음 세대(그중에서도 특히 여성)를 위한 목소리를 꾸준히 내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영화는 구구시의 과거 공연 실황, 뉴스 아카이브, 현재 인터뷰를 교차 편집하면서 시대를 오간다. 구구시의 음악 스타일이 개인취향인가? 라고 했을때 사실 그닥 개인적 취향은 아니나, 훌륭한 가수라는 것은 이를 통해서 알수 있었다. 더이상 돌아갈 수 없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 아쉬움, 안타까움 같은 감정들이 영화 내내 드러나긴 하나, 직접적인 구구시의 발언이 아니라 이런저런 영화적 장치들을 통해 감독은 보여주고자 했던 것 같다. 

이 영화 또한 굉장히 재밌었지만, 아쉬웠던 점은 이 영화가 인물을 통해 시대를 읽어내려는 시도를 했었고 그것이 안 좋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중간중간 내기준에서는 왜 굳이 이런게? 싶었던 예술적인 장면들이 많이 들어가 있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개인취향이겠지만 그냥 건조하게 구구시의 인터뷰나, 이란의 현 상황, 디아스포라 커뮤니티 내의 이야기들을 좀 더 다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Made of fire가 원제인데, 한국어 번역은 돌아온 구구시이다. 아마도 구구시나 이란의 상황에 익숙하지 않을 한국사람들을 위해 풀어서 번역을 하다보니 저렇게 번역을 한 것이리라고 생각하는데, 구구시의 컴백이라는 사실에는 충실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원제가 더 멋있다고 생각한다. Made of Fire, 즉 ‘불로 만들어진’이라는 표현은 온갖종류의 고난을 딛고 무대에 다시 서서 단순한 엔터테이너가 아니라 혁명전 이란과 디아스포라 커뮤니티의 상징이자 일종의 인권운동가 비스무리한 것이 되어버린 구구시가 마치 불로 만들어진 정열적인, 불꽃같은, 끄려고 해도 꺼지지 않는, 다시 불타오르는 여인이라는 것을 나타내고 싶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걸 20년동안 갇혀있다가 나왔다고 돌아온 구구시라고 하는건 좀 아닌거 아닌가...같은 생각을 했다. 

「돌아온 구구시」는 단지 과거의 슈퍼스타를 회고하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이 영화는 갑자기 세상에게 엄청난 억까를 당해버려 본인이 좋아하고 평생 해왔고, 그 누구보다 열심히 잘 할수 있는 생업과 취미와 특기를 빼앗긴채 침묵당해버린 여성이 인고의 세월을 거쳐 자신의 목소리를 다시 찾아내는 이야기다. 결국 구구시는 본인이 가장 잘하고 좋아하는 음악으로 돌아왔고, 그 노래는 이란 내나 중동에서 소비되던 과거와 국경을 넘어 디아스포라 커뮤니티 곳곳에서, 전세계에서 이란 사람들에게 위로와 연대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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