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인기 페이스북 페이지 <만화로 보는 곤충의 진화>(https://www.facebook.com/galoist/)에 연재되었던 만화들이 단행본으로 묶인 책 <만화로 보는 공룡의 생태>를 읽었다. 사실 이미 인터넷으로 다 읽었던지라 내용을 모르지는 않았지만, 책으로 몰아서 보니까 또 보는 맛이 쏠쏠했고, 오랜만에 <만화로 보는 곤충의 진화>또한 정독했다. 작가님과의 친분이 없는 건 아니다. 내가 하고 있는 과정남 팟캐스트에서 <[과정남 인터뷰 65화] 어떤 만화가와의 대화>(http://www.podbbang.com/ch/7549)에서 <만화로 보는 곤충의 진화>가 나왔을때 모시기도 했었고, 작년에 <과학기술의 일상사> 책이 나왔을 때는 축전을 그려주시기도 했었다. 여튼 친분과는 무관하게 책은 돈주고 샀고, 심지어 예.약.구.매.라는 것을 했기 때문에 번외편이지만 갓-띵작 그 자체인 <세뿔돼지>또한 받을 수 있었다. 차냥해 갓로아!
0-1. 일단 본 리뷰는 내용 요약은 거의하지 않을 예정이다. 만화 자체가 이미 인터넷에 공개가 되어있기도 하고, 기본적으로는 만화이기 때문에 진짜 쉽게 술술 읽힌다. 결국 얘기하고자 하는 건 한국에서 과학대중화 혹은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과학컨텐츠가 나아가야할 방향은 무엇인가이며 이 책은 왜 대단한 책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1.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과학컨텐츠라고 하니까 거창해보이지만, 사실 이는 과학컨텐츠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에서는 분야를 막론하고, 만약 특정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해보고자 하는 성인이 있다면 초보-중수-고수까지 나름의 커리큘럼을 가지고 이것저것 읽어볼 수 있을 정도로 컨텐츠의 양이 풍부하다거나 수준이 촘촘하게 구성되어있지 않다. 가장 많은 컨텐츠는 당연하게도 주로 [초보] 레벨에 많으며, (당연하게도) 이런 책들은 읽기도 쉽고 흥미를 유발하는 책들이 많다. 그러나 훌륭하게 입문서로 기능하는 이러한 [초보]레벨의 "특정 분야(예를 들자면 과학)에 약간이나마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책들의 문제는 흥미를 위해 1)역사적으로 흥미로운 사례들의 모음집-aka 우표수집책(...)-이 되거나 2)복잡한 맥락을 단순화하여 단편적인 이해만을 시킨다던가 3)현장의 실제 논의를 잘 반영하지 못하는 오래된 논의들을 소개한다던가 하는 경우들이 많다. 그렇기에 실제로 이런 책들보다 대학교 1학년 수준의 전공 교과서를 읽는 것이 낫다는 현인들의 주장이 있고, 백분 동감하는 바이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실 교과서를 읽는 걸 싫어한다. 아 물론 나도 그렇다. 그렇다면 성인 대중을 타게팅한 전문분야 컨텐츠가 나아가야할 길은 무엇일까(...) 나도 모른다. 알면 돈을 많이 벌었겠지(...) 그치만 썰을 풀어보자면...
2. 그렇다면 일반인들은 어떻게 과학을 접하란 말이냐! 좋은 입문서란 무엇이냐! 라고 묻는다면, 꼼꼼하게 각주와 주석을 달고, 저자가 알고 있는 바로는 이러하나, 더 관심이 생기면 무엇을 볼수 있는지를 주절주절 알려주는 책이라면 훌륭한 입문서로써 기능할수 있다고 본다. 그런 책을 본다면 보통은 "아, 죄송합니다. 전 여기까지만 하고 나가겠어요" 라고 하며 보통은 레벨업하여 중수-랜드로 가는 것을 포기하겠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훌륭한 입문서들은 사실 꽤나 많고, 한국어로 된 책도 많을 뿐더러, 해외의 양서들이 잘 번역되어 들어오기도 한다. 이런 입문서들은 (아마도) 전문화된 분과학문의 전 분야를 통털어 꽤나 있을 것이고, 만약 누군가 번역을 하려 한다거나 새로 쓰려 한다면 출판도 아마 꽤나 쉽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중에서 소수의 덕후들은 레벨업을 할 것이고, 결국 그들이 부푼 마음으로 중수-랜드로 가면 발견하는건 황무지(...)다.
3. 이는 비단 과학책 혹은 과학컨텐츠만의 문제는 아닐것이다. 한국에서 어떤 의미로든 전문화된 분과학문의 학부생 3~4학년 정도의 컨텐츠를 성인이 취미로 소비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커다란 노력이 들기 마련이고, 출판사 혹은 컨텐츠 제작자 입장에서도 중수대상 컨텐츠는 전혀 수지가 맞지 않는다. 기억하자. 한국의 성인들은 분야를 막론하고 1년에 고작 1권도 책을 안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을. 전공자 혹은 고수들은 이미 학술장안에 들어와있고, 대학교 레벨 이상의 컨텐츠들을 접해왔으며, 심지어 해외에서 직접 컨텐츠를 생산하는 사람들과 교류하고 있기도 하다. 이들에게 있어, 중수레벨의 컨텐츠를 번역해달라, 혹은 생산해달라 라고 하는 것은 본인들에게 메리트가 전혀 없는 일이며, 시장의 사이즈를 봤을 때 쉽사리 이런 컨텐츠를 제작하려는 이들도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목마른 덕후(...)들은 외국어를 배우게 된다. 밀덕들이 괜히 일본어(...) 영어(...)등을 독학하는 것이 아니다. 어디 밀덕뿐이랴? 스포츠 덕후인 인간들도 똑같고(...) 역덕(...)들도 똑같다.
4. 성인들을 위하여 컨텐츠를 제작한다는 것은 또한, 어린이들을 위해 컨텐츠를 제작하는 것과는 명실상부하게 달라야 한다. 아이들도 물론 "왜?" "왜?" 하면서 여러가지를 물어보지만,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책들은 맥락성과 디테일을 강조하지 않더라도 그리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그렇지만, 성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컨텐츠라면, 그것도 적어도 좋은 입문서이자 중수-랜드로 이끌어주는 길잡이로써의 컨텐츠를 제작한다고 생각을 해보면 개인적으로 가장 적절한 컨텐츠의 형태는 "이러이러하다"라고 답을 내려주는 컨텐츠이기보다는 1)독자에게 다양한 해석을 할수 있는 껀덕지를 던져주고, 2) 이 책에서 끝나는게 아니라, 이 책에서 나오는 내용들을 혼자 살펴볼수 있게 떡밥을 던져주고 3) 현시대의 논의와 문제의식을 동시에 소개해 주어야 한다고 본다.
4-1. 물론 계속 이야기 하지만 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어 사용자, 그것도 성인 한국어 사용자 층을 대상으로 조금이라도 어려운 이야기를 한다면 편집자 혹은 컨텐츠를 1차적으로 감수하는 사람에게 반복적으로 들을 이야기는 "중학생도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해주세요"라는 말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저런말을 들을 때마다 내가 중학생이 알아먹을수 있게 설명할 수 있다면 중학생용 책을 썼겠지(...) 오히려 성인들은 너무 쉬우면 재미없어 하는거 아닌가? 라는 생각만 들었다. 물론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 인간이니까 큰 돈을 못 벌었을 것이다(...) 나도 마법천자문같은거 만들고 싶다...
5. 갈로아의 책들은 2~4에서 말한 훌륭한 입문서와 중수-랜드 초입 언저리에 위치해 있는 책이 아닌가 싶다. 역시나 과정남에 출연한적이 있고, 몇년전 읽었던 올해의 책들 중 하나로 꼽은 박진영의 <공룡열전>이 텍스트로 그러한 역할을 훌륭히 해내었던 것처럼, 갈로아의 만화책들은 만화라는 친숙한 매체를 통해 글로만 쓰여있다면 다소 딱딱하게 다가왔을 법한 "진화"와 "생태"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물론, 이 만화에 나오는 수많은 패러디들을 모두 이해하려면 인터넷의 특정 영역(ex. D모 사이트)에서 시간을 꽤나 보내야만 하는 것이 선결조건이지만, 이러한 패러디를 모른다고 해서 이 책에 담겨있는 충실한 과학적 내용들이 어디론가 가는 것도 아니다. 굽시니스트의 <본격 제2차 세계대전>을 보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고, 그의 <한중일 세계사>를 열렬히 찬양하는 독자로써, 갈로아, 아니 갓로아 작가의 <만곤진>과 <만공생>은 오프라인세계와 온라인 세계를 통합하여 본인을 한국 과학만화컨텐츠계의 굽시니스트로 자리매김하는 그야말로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을 가져온 띵작이라고 감히 칭할 수 있겠다. 텍스트의 내용만 충실한 것이 아니라, 그림으로 그려지는 자연과 생명체의 묘사(혹은 모사)에도 꽤나 공을 기울였음을 여실히 알수 있다.
6. 또한 갈로아의 만화는 이 만화가 그려진 2018년과 2019년의 한국 인터넷 지형도와 사회를 관통하는 특정한 유머 코드를 이해하는 1차사료(...) 로써의 성격 또한 충분히 가지고 있으며, 충실한 참고문헌을 통해 레벨업을 하려는 각오가 되는 독자들에게 훌륭한 사다리를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만화의 형식을 빌고 있지만 내용들이 무작정 쉬운 것도 아니며, 특히 "진화"와 관련된 여러 꼭지들은 한국 전반적으로 공교육에 한해(순수하게 개인적인 경험이다)"진화"혹은 "진화론" 자체가 그다지 잘 학습되지 않는 경향이 있음을 볼 때 생물학 교과서 특별부록으로 넣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이 있다.
6-1. 갓로아 작가님은 만화가이기에 앞서, 학생이기도 하며, SNS를 보면 지금도 꾸준히 산으로 들로 섬(...)으로 곤충 채집을 하러 다니는 [진.짜] 곤충 덕후다. 그의 무시무시한 생산력이 이 책 두권에서 그치지 않길. 그리고 그의 드립력이 우주대명작 <세뿔돼지 3부작>에서 끝나지 않고, <전생했더니 세뿔돼지였던 건에 대하여> 같은 약빤 드립으로 가득찬 컨텐츠로도 발산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3부작에서 끝내기에는 너무 아쉽지 않습니까!! 갓로아 선생! "만화책도 너무 좋았습니다. 우리는 곤충과 공룡에 대해 너무 몰랐습니다. 정말 위대합니다, 선생!"
7. 조금이라도 과학에 관심이 있다면, 곤충 좋아한다면, 공룡 좋아한다면 아니면 만화 좋아한다면, 아니면 그냥 인터넷(...) 많이 한다면 꼭 읽어보길 바란다. 읽다보면 뭐라도 배울 것이다. 만약 다 읽고도 대충 뭔소린지 감이 안 온다면 다음 한문장만 외우면 될 것이다. "진화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나아가는 진보가 아니다"
뱀발) 해당 책을 출판한 곳과도 어떠한 연관성이 없음을 또한 알려드립니다(...) 사실 다른 책 읽고 있다가 읽기 싫어서 호다닥 글 씀... 갓로아 작가님 <만곤진> 책은 운이 좋았는지 정성스러운 사인이 담긴 책을 받았는데, <만공생> 책은 이름밖에 없어서 약간 눈물날뻔 했음다...엉엉... 언젠가 오프에서 만나면 다시 사인 받고 말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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