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종철, <까대기>

by 박댐 2019. 7. 11.
반응형

 

0. 보리출판사에서 나온 <까대기> 읽었다. 산 이유는 당연하게도 만화라서 산 이유도 있겠지마는 페친 분들이 탐라에 좋은 만화라고 추천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 구술사나 인류학 연구서를 읽은 것만큼 다 읽고 나니까 생각이 많아지는 만화였다. 물론 아이러니 한건, 이 책 또한 택배로 받았다는 것일 게다. 사실 다른 걸 산다기보다 거진 책을 택배로 주문을 많이 하는데, 아마도 택배 하시는 기사님은 날 별로 안 좋아하지 싶다(...) 아, 책은 돈 주고 샀고, 당연하게도 출판사 또는 저자와의 연관성은 0다. 

 

1. 까대기는 택배 상하차를 뜻하는 말이다. 커다란 화물차가 와서 물류센터에 차를 대놓고 나면 그 커다란 화물차에 있는 여러 택배들을 각 집마다 다닐 택배기사들이 작은 화물차에 실을 수 있도록 나누고, 오분류된 택배를 다시 큰 화물차에 싣는 일을 뜻한다. 책 속 캐릭터 이바다는 만화가가 되고자 하는 꿈을 안고 지방에서 서울로 상경한 만화가 지망생이다. 만화로 돈을 (아직은) 벌 수 없기에, 까대기를 시작했고, 그러다보니까 6년동안 꾸준히 생계를 위해 까대기를 하게 된다. 물론 이는 이 만화의 글과 그림을 쓴 이종철 작가의 자전적인 캐릭터이다. 

 

2. 가끔씩 아니 종종 신문 사회면에서 택배기사들에 대한 르포기사나, 온라인/모바일 쇼핑의 대두와 당일배송으로 인한 물류시스템의 문제를 접하곤 한다. 신문과 방송의 탐사보도에는 양극단의 스토리들이 있다. 물류혁신을 해나가고, 드론과 로봇과 첨단 수요예측 시스템과 수학적 모델링을 접한 IT혁신물류공룡들의 이야기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매일 물 2리터 6개들이 상품을 엘리베이터도 없는 원룸건물 5층까지 올려다놔야 하는 택배기사들의 이야기 말이다. 물론 이 두 양극단의 스토리는 각각 현재의 물류/택배 배송 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현행 물류구조의 악습과 차별을 철폐해야 하고 택배와 물류산업과 관련된 노동을 하는 사람들의 고용구조와 비정규직화가 문제라고 환원하거나, 아니면 무턱대고 로봇과 IT시스템을 사용한 물류혁신을 찬양할때 쉽사리 잊고 넘어가는 것은 결국 현장의 이야기이다. 

 

3. 그런 의미에서 6년간 택배 까대기에서부터 도매상의 까대기까지 다양한 노동의 현장에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만화는 다소 환원적인 물류시스템에 대한 비판과 칭송 사이 어딘가에서 택배 시스템 안의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물론 당연하게도 현행 물류시스템에서 "갈아넣어지는" 사람들의 노동력에 대한 비판을 엿볼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만화는 과도하게 열정과 흥분에 차 시스템을 당장 갈아엎어야 한다는 전복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마치 남의 이야기를 읽는 것처럼 담담하게 현실을 건조하게 그려냄으로써 내가 아무생각없이 왜 시킨지 오래되었는데 배송이 아직까지 안왔지? 하고 투덜대다가 받았을 택배가 어떻게 내 손까지 들어오게 되었는지 되묻게 만든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이 이 책의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의견과 사상을 강요하기보다는, 이 만화는 독자에게 내 입장이라면, 내가 저 상황이라면 어땠을까 생각할 꺼리를 던져주며 자신과 자신 주변의 경험을 풀어내고 있다. 

 

3-1. 단순히 본인이 경험했던 까대기뿐 아니라, 거기에서 만난 다양한 동료들의 이야기들이 나온다. 화물차 기사, 택배기사, 택배지점 관리자, 동료로 함께 까대기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경리일을 보는 사람, 지점장 또한 빠짐없이 그려지며, 분명히 사회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적절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이야기까지 읽어볼 수 있다. 또한, 캐릭터 이바다가 작업을 하는 택배 지점, 도매시장의 장소들 또한 꽤나 충실하게 그려져 있는 것 같다. 물론 난 안가봐서 그림만 보고 생각하는 것이지만 말이다(...) 

 

4. 이 책은 택배시스템을 굴러가게 만드는 노동자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그 시스템에서 노동하는 작업자들이 매일 사용하고 마주치는 기계 및 시스템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택배 상하차를 할 때 까는 롤테이너의 디테일이나 큰 화물차에서 작은 화물차로 택배물이 이동할 수 있도록 작업자들이 만드는 동선에 대한 이야기들이 흥미로웠다. 큰 화물 트럭에 레일을 대고, 스캐너를 찍고, 그걸 배송을 나가는 시스템에서 일하는 작업장. 레일조차 없이 바닥에다가 내려놓고 옮기는 소규모 작업장의 이야기부터 전국의 택배들이 모이는 큰 물류허브인 이천과 옥천허브의 이야기, 농수산물 도매시장의 대규모 작업장의 시스템 또한 빠짐없이 다루고 있다. 

 

5. 일독을 권한다. 나야 애초에 택배기사님을 만날일이 거의 없이 퇴근하고 집앞에 놓여있는 택배박스 들고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 대부분의 일이지만 향후 택배기사님을 직접 만날일이 있다면 꼭 고생하신다는 말을 드리고 싶어지기는 했다. 그리고 책 자꾸 택배로 많이 시켜서 죄송하다는 말도(...) 게다가 육체노동이라는 정말 거리가 멀게 더울때건 추울떄건 모니터만 보고 앉아 일하는 사무잡무러(...)인 나로써는 한번도 제대로 생업을 위해 해보지 못한 육체노동이 얼마나 힘든 일일지 다시금 떠올리게 되었다. 

 

6. 이 책을 읽고 마음이 안 좋아졌다고 해서, 내가 택배를 안 시킬일은 없을것 같다. 애초에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많은 사람들은 꾸준히 지금시간에도 택배를 시켜대고 있을 것이고, 큰 화물차에 실려서 옥천허브로, 각 지점으로 움직이고 있는 택배들도 있을 것이다. 아마 이 책의 작가 또한 사람들보고 이 책을 읽고 택배 시키기를 관두기는 원치 않을 것이다. 그저 우리가 아무생각없이 스마트폰으로, 또는 마우스 클릭 몇번으로 주문해 내 집앞으로 택배가 오기까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있었고, 그 노고는 각자 책한권만큼의 스토리를 가진 인간들이 몸과마음을 갈아넣는 노고임을 알아주길 바랬을 것이다.  모든 육체노동자들에게, 더울때도 추울때도 밖에서 일하는 분들께 경의를 표하며(...) 많은 분들께 일독을 권한다. 담번에 택배기사님의 택배를 직접 받을일이 있다면 음료수라도 하나 드려야겠다(...) 

까대기 : 택배 상자 하나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 보리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