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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디외, 샤르티에/ 이상길, 배세진 옮김 <사회학자와 역사학자>

by 박댐 2019. 7.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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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자와 역사학자, 킹콩북

0. 킹콩북에서 나온 <사회학자와 역사학자> 읽었다. 뭔가 대담집이라길래 샀다. 왜냐면 학자들이 강의한거나 대담집 나온거는 읽을만 하기 때문(...) 대다수의 학자들이 본인의 연구와 학문을 글로 풀어낸거는 예전에도 그랬지만 요새는 더더욱 읽어내기가 수월치 않다.  부르디외의 책은 사실 <구별짓기>를 1회독 하고 다른 책들을 읽어보지는 못했다. 읽어보고 싶은 맘이야 굴뚝 같지만서도 사실 다른 책들을 못 읽은 이유는, <구별짓기> 도 제대로 다 읽고 이해했는지 내가 읽어놓고도 딱히 잘 모르겠기 때문(...) 대담자로 나서서 날카롭고 훌륭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샤르티에는 나는 전혀 알지 못했던 학자였는데, 찾아보니 엄청 대단하신 분이었다. 아, 책은 내 돈 주고 샀고, 번역을 하신분들과는 일말의 친분도 있지 않다. 원문을 읽어보지는 못했으나, 책은 술술 잘 읽혔다.

 

1. 이 책은 80년대에 프랑스의 라디오 프로그램에 둘이 나와서 대담한 것을 엮은 것이다. 이런 책이 나오게 된 자세한 경위(?)는 출판사가, 그리고 책이 잘 소개하고 있으니 그냥 넘어가도록 하자. 놀랐던 점은 일단 라디오 방송에 이런 프로그램이 있었다는 것이고, 그게 그래도 꾸준히 지속되었었던 모양이라는 것이다. 애초에 한국에 부르디외 정도 되는 급의 사회학자가 없기는 하지만서도, 그런 급의 한 분야를 이끄는 굇수급 현역 연구자이자 학자가 나와서 다른 분과학문의 일짱(...) 과 자유롭게 학술적인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그걸 라디오에서 할 수 있었다는게 뭐 여러모로 놀라웠다. 그리고 또 놀랐던 점은 라디오 프로그램이라면 당연하게도 PD도 있고 작가도 있고 다 있을텐데, 그걸 학자에게 맡겨두고 그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게 하다니(...) 한국처럼 이미 방송이라면 어느정도 와꾸 짜놓고 진행하는게 당연한 동네에서는 절대 안될 듯...

 

2. 샤르티에는 분명 본업이 사회학 연구자가 아닌 역사학자임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의 사회과학 학술계에서 부르디외가 쓴 저작들에 대해 어떤 종류의 논의들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충실히 따라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부르디외에게 꾸준히 던지는 질문들이 충분히 공부를 하지 않았더라면 나오지 않았을 법한 꽤나 날카로운 질문들이었다. 그리고 역시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대담을 했고, 둘 다 서로 친분이 있었던 사람들이라 그런지 나름 서로 농담을 주고 받고 존중하는 대화를 나누는 것이 텍스트로도 느껴진다. 

 

2-1. 그 와중에 발견한 이 둘의 대화중 내가 거의 육성으로 현웃 터질뻔한 대사(...) 아니 공부를 이만큼 한 인간들조차 이런 빈약한 자존감에 시달리며 랩미팅에서 교수님한테 털리는 석사과정생 스러운 대사를 하다니. 저 느낌표 "없지요!"와 (웃음) 이 정말 킬포다(...) 갓르디외 성님 의외로 갭모에 스러운 데가 있잖아...??!!

자학하는 샤르티에와 그럴리 없다고 말해주는 부르디외(...) (웃음) 이라고 되어있는 부분이 키 포인트.

 

3. 가장 인상깊게 읽었던 부분은 부르디외가 학술계에서 보다 단어와 개념 등을 좀 더 역사적인 맥락으로 보고 성찰하며 학문을 해야한다고 이야기하는 부분이었다. 예를 들어, 우리가 현재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는 "과학자(scientist)"라는 단어를 보자. 이 단어는 생각보다 널리 쓰이기 시작한지 오래 안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과학을 만들었다고 여기는 사람들 - 뉴턴을 위시한 영국 왕립학회의 인간들 - 은 그럼 "과학자"가 아니고 무엇이며 이들의 활동을 "과학"이라고 불러야 할 것인가? 물론 그럴 수는 있겠지만 엄밀하게 말하자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받아들이고 있는 "과학"과 "과학자"의 개념은 19세기, 20세기의 각기 다른 문화권에 사는 사람들과 꽤나 다를 것이라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겠다. 부르디외는 학문에 있어서 보다 역사적인 맥락 - 지성사적인 맥락이라도 해도 좋을 것인데, 이 단어 자체와 개념에 대해 내가 너무 아는 것이 없다 - 에서 아예 공부를 하는 사람들 모두가, 각각 본인들이 사용하는 단어와 개념과 본인이 속해있는 학술계와 위치 등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얘기를 하고 있다. 

 

3-1. 물론 이는 어찌보면 요즘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흔히 대학원에 들어간다거나 인문/사회과학 공부를 할 때면 듣는 조언과 이야기일수도 있다. 그렇지만 흔히 듣는 조언이라는 말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 못한다는 말 아니곘는가...? 막말로 별 생각안하고 그냥 주변에 흔히 들리는 말과 글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공부를 하면 쉽게 할 수 있는데(...) 끊임없이 "내가 쓰는 말이 요게 적절한가?" "우리 선생님은 A라고 말하긴 했지만 그건 선생님은 B라는 곳에서 C라는 선생님한테 80년대에 배운 사람이니까 그 A는 지금 우리 시대에는 D라고 말하는게 적절할꺼 같은데" 같은 생각을 하라는 말인데... 이거 너무 가혹하고 힘든일 아닙니까...? 그냥 누가 뭐 하나 말하면 토씨하나 잡고 "55도발 왜 하냐고" 외치는 침착맨 마냥 따져야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인데, 그래서 공부 오래 하면 사람들이 성격이 나빠지고 알아서들 아싸(...)설명충(...)이 되는건가 싶기도 하고... 긴글충이 되는 것도 짧게 설명하려고 아무리 노력을 해도 당연히 A를 설명하려면 그 A 전에 있었던 일을 설명해야 A를 말할수 있으니 그런건가 싶고 그렇다(...)

 

3-2. 그래서 예전에 논의되었던 개념과 말을 현대에 맞게 "번역"을 하는 것이 중요한가 아닌가, 아니면 그 개념을 있는 그대로 놔두고 논의하는 것이 좋은가에 대한 코멘트도 있었던 것 같다. 물론 각자 알아서들 선택할 일이겠지만 공부를 하는 사람이라면, 아니면 조금이라도 연구 비스무리한 공부를 하면서 까여보았던 PTSD가 있는 사람들이라면 다들 이 책 읽다보면 뭔가 환청처럼 들릴지도(...)

 

4. 사르트르처럼 전방위적인 지식인은 이제 더이상 없어야 하고, 우리 모두는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해야하고 자기가 말 할수 있는 것만 말해야 한다는 것에도 동의했다. 물론 사르트르를 읽어본 적이 없어 뭐라 말하긴 힘들지만 말이다. 근데 읽다보니까 어이가 없었던게 아니 근데 부르디외 선생님(...) 어딜 봐서 선생님이 한 연구와 쓰신 글들이 전방위적이 아닌것이지요...? 보통 닝겐들은 엄두도 못 낼 생산력과 꾸준함으로 논문도 많이 쓰고 책도 많이 내고 뭐 여튼 뭐 많이 했으면서(...) 넘모 이기적인거 아님까...왜 혼자 똑똑하고 그러셈...

 

5. 부르디외가 쓴 글과 한 연구들은 민중/대중을 향하고 있고 그들을 위한 학문임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부르디외의 말과 글을 이해할 만한 사람들의 대다수는 민중/대중이 아님을 샤르티에는 지적하고 있다. 부르디외도 이에 일정부분 동의를 하는 듯하고. 이는 당연하게도 부르디외와 샤르티에뿐 아니라 어떤 형태로든 공부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조금씩 생각하는 부분일 것이다. 어떻게 하면 절대다수의, 제대로 훈련되지 않은 사람들과 소통하여 나의 공부가 소위 사변적인 뇌피셜(...)스러운 이야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실세계에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같은 고민 말이다. 아, 나는 당연히 이런 고민을 해봤지만 나는 그런걸 할 수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애저녁에 깨달았다(...) 

 

6. 구조와 아비투스를 이야기하는 연구자임에도 부르디외는 개인이 그 틀을 자각하고 조금이나마 어떤 "틈" 같은 것을 만들어서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인간의 자유의지나 개인의 노력으로 틈을 만들수 있다라는 그런 다소 낭만적인 생각은 안하시는 분인줄 알았는데(...) 어느정도는 동의하면서 읽다가도 저 "틈"을 만들기 위한 선결조건이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구조를 파악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식의 이야기를 부르디외 센세가 하는데, 않이(...) 그거 그냥 죽을때까지 "아 왜케 나를 둘러싸고 있는 굴레가 무거운가" 곶통 받으면서 번민하라는 말과 뭐가 다릅니까ㅜㅜ 그리고 뭐랄까 장을 벗어나 새로운 장을 창설하는 마네나 플로베르 얘기를 하시는데, 아니 저 사람들을 예로 들면서 다들 뭔가 새로운 장을 창출해낼수 있다 뭐 그런 가능성이 보인다 그런거...얘기하시는건 다 좋은데...대다수의 일반 닝겐들은 그런거 잘 못한다구여...ㅠㅠㅠㅠ 

 

7. 뻘소리가 길었다. 여튼 책은 재미있다. 부르디외가 본인을 향해 프랑스 학술계에서 가한 공격을, 샤르티에의 질문에 대한 대답과 함께 방어(최선의 방어는 물론 공격이긴 하지만...)하는 것을 읽는 것도 흥미로웠다. 부르디외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이미 접해봤을 개념인 책 초기의 이야기들과는 다르게 책의 마지막으로 가면 부르디외의 최근 연구관심사와 저술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그냥 내 느낌이지만 샤르티에의 질문은 1장보다 뒤로 가면 갈수록 더 날카로워지는데, 부르디외의 답변은 최근의 연구로 가면 갈수록 본인도 생각이 좀 정리가 덜 된게 아닌가 싶은 말을 한다. 아 물론 이는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말이지, 부르디외 센세의 안정리된 최근 연구에 대한 생각은 대에충 공부하는 대다수인간들의 장 정리된 생각보다 분명 훌륭할 것이다. 

 

8. 일독을, 아니 이독 삼독 정도를 권한다. 책이 짧아서 읽기가 좋기 때문(...)인 것도 읽지만, 쉽게 읽히는 책임에도 불구하고 샤르티에의 질문과 부르디외의 대답 하나만 가지고도 몇시간 짜리 키배를 벌일 수 있을 것 같은 큰 주제들을 꽤나 많이 다루고 있다. 나는 책에 메모를 한다거나 밑줄을 긋는다거나 하는 걸 안하지만, 밑줄 긋는 사람들은 아마도 밑줄 그을 문장들이 참 많을 것이다. 특히 대학원 언저리에 있다거나, 아직 뭐가 무서운지 모르고 열심히 살다가 대학원에 갈 본인의 운명을 아직 자각하지 못한 학부생들이라던가, 부르디외 읽고는 싶은데 구별짓기 어려워서 대충 조금만 읽어보고 싶은 분들에게도 권한다(사실 이건 거의 나인데...?) 물론 그 뿐 아니라 그냥 네임드 학자들끼리 서로 친목질도 해서 좀 친한데, 세상 사는 얘기말고 연구얘기 빡시게 하면 무슨 얘기 하는지 궁금한 분들도 읽어도 된다. 뭐 책도 별로 비싸지도 않으니 그냥 다들 대충 사서 읽으시길(...)

 

9. 역자들에게 찬사를 보내고 싶다. 솔직히 말하면 프랑스 학술계의 저시대 담론이나 저작들을 전혀 따라가지 않은 나같은 사람은 이해에 한계가 명확함을, 그리고 명확할수밖에 없음을 책을 읽으면서 여실히 깨달았다. 저 때 당시 프랑스의 빅네임들이 무슨 썰을 풀었는지를 아는 사람들은 훨씬 더 깊이있게 책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나마 나같은 캐주얼 독서가가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뻘글이라도 쓸 수 있었던 건 충실히 달려있는 역자들의 각주와 가독성있게 번역을 한 역자들의 노고 덕일 것이다. 아 그리고 많이 팔렸으면 좋겠지만 솔직히 말하면 잘 안 팔릴거 같은 이런 책도 내주신 출판사 분들께도 경의를(...) 

 

10. 10번 채우고 싶어서 10번까지 썼음. 한국에도 언젠가 이런 기획이 나와서 뭔가 컨텐츠가 되면 좋지 않을까 싶은데... 조금이나마 안면이 있고 연락을 해봤던 공부 열심히 하시는 분들이 알아서들 뭔가 기획해서 내주셨으면 좋겠다(...) 내가 기획/제작 할 깜냥은 전혀 없으니...그냥 충실한 콘텐츠 소비자로써 열심히 소비하겠다는 장담만 해드린다...ㅎㅎㅎ....

사회학자와 역사학자, 킹콩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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