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구범진, <청나라, 키메라의 제국>

by 박댐 2019. 6. 18.
반응형
청나라 키메라의 제국, 민음사

0. 민음사에서 나오고 있는 <서울대 인문 강의> 시리즈는 꽤나 재밌는 시리즈이다. 일단 책이 엄청나게 두껍지 않고, 다루고 있는 내용은 가볍지 않은 내용인데에 비해 확실히 대중을 대상으로 쓰였다라는 것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대중서와 역사서의 균형을 맞추려 하는 노력이 저자들의 말이라던가 글 곳곳에서 느껴진다. 그게 성공했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어떤 부분들에서는 조금 더 나아갔으면 싶은 부분들도 확실히 있고, 어떤 부분들에서는 이걸 이렇게까지 대중서에서 길게 설명할 일인가 싶은 부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근데 뭐, 이건 애초에 쉽다면 쉽고 어렵다면 어려운 책이 세상에 나오는데 일조한 나새끼(...)가 할말은 아니긴 하다(...) 아, 역시나 저자와는 아는 바가 없고, 책은 내 돈 주고 샀다. 와썹맨 스타일로 미리 밝힌다(...)

 

1. 이 책은 우리가 별 생각없이 황제의 딸(...)같은 드라마로만 기억하고 있는 청나라가 사실은 하나의 민족과 문화권으로 묶인 국가가 아니라 연합체적인 성격의 "제국"의 형태를 띄고 있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그 제국의 형태는 키메라와 비슷하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여기서 키메라는 그리스로마 신화의 키메라가 아니라 동일한 생물 개체에 서로다른 유전자가 포함된 존재라는 뜻이라고 하며, 미드 CSI에 나온다고 한다. 처음에는 당연하게도 그리스로마신화의 키메라인줄만 알았다가 오히려 그게 아니라서 더욱 놀랐다. 

 

1-1. 여기서 쓰이는 키메라의 어원은 물론 그리스로마신화에 나오는그 키메라에서 온 것은 맞다고는 한다. 사실 읽다가 보니까 느낀 것은 다소 생소하게 느꼈던 "키메라"라는 컨셉보다는 책 나중에 적극적으로 쓰시는 현대의 주식회사 컨셉이 더 청나라 왕조를 설명하는데 적합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했다. 물론 이는 내가 신화의 비유보다는 경영의 언어에 조금 더 친숙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2. 청나라가 키메라 같은 제국이라고 이야기 하는 부분이 재미있었다. 기실 이 책은 겉에서 보기에는 중국을 통일한 국가이고, 다른 여타의 중국을 통일한 왕조가 그렇듯이 황제가 다스리는 중앙집권체제를 유지했던 것처럼 보이는 청나라가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18세기말까지만 하더라도 느슨한 연합제국의 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을 강조하며 보여주고 있다. 또한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냥 친위군대(?) 같은 느낌으로 받아들이기 쉬운 팔기 제도가 청나라의 근간이었고, 청나라를 이해하는데에 있어 팔기제도를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임을 강조하고 있다.

 

2-1. 아마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정치 체계 상에서는 다소 생소한 것이 이 팔기제도 인 것 같다. 내가 미력하나마 이해한 바로는, 팔기 제도는 단순히 누르하치나 초기의 청나라를 만든 리더들과 함께 전쟁을 치뤘던 친위대(팔기군)로써 군대로써의 기능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고(아마 청나라 초기에는 당연히 그랬을 것이다), 정치, 사회, 경제 등의 국가운영에 있어 다양한 역할을 하는 지배계급의 역할을 수행한 것 같다. 팔기군은 만주팔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청나라가 확장을 하면서 몽골팔기, 한군팔기까지 확장되기도 하고, 이들은 황제와 국가에 충성하는 지배계급으로써 일반적인 한족들과 섞이지 않고 지배계급으로만 기능했던 것으로 생각하면 될듯 하다. 

 

2-2. 저자는 조선인들 또한 팔기군에 소속되었던 것을 말하고 있다. 이들은 포로들이기도 했고 투항한 사람들이기도 했으나 나중에는 조선과 싸울 때 한 몫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3. 출판사 서평에도 나와있듯 청나라는 중국인들, 소위 말하는 한인들의 제국이 아니었다. 몽골지역에서는 대칸의 후계자로써의 지위를 누렸고, 티베트에서는 전륜성왕이자 "문수보살 황제"의 이미지를 누렸고, 신장 위구르 무슬림들의 세계에서는 "이슬람의 보호자"였고, 청나라의 기원인 만주에서는 누르하치의 적법한 계승자로써 한으로 불렸다. 심지어 저자는 "만한일가"라는 대외적이고 공식적인 표어(?)스러운 국가철학과는 다르게 실제로 고위 정치조직 및 하부조직까지 만주족과 한인이 절대 동일하게 대접받지 않았고 오히려 한인들은 국가의 중요한 운영차원에서 꾸준히 배제되었음을 여러 자료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4-1. 청나라는 오히려 중국을 통일한 후에도 만주족의 정체성을 지키고 연합체의 성격을 띈 나라들의 우두머리로써 중국을 다스렸고, 그렇기에 청나라를 단순하게 한족들만의 중앙집권적인 나라로 보는 건 무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이렇게 한족들과 엮이는 것을 철저하게 처음부터 막았기 때문에 청나라가 200년 이상 갈 수 있었다는 것 또한 어느정도 수긍하게 되었다.

 

5. 그러나 이렇게 여러 가지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던 "키메라 제국"으로써의 청나라는 팔기의 타락, 한족 집권층의 부상, 외부환경의 변화를 거치며, 한족의 유전자가 주도권을 띄기 시작했다고 저자는 서술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19세기 후반쯤 가면, 어느정도는 연합체적인 제국의 틀을 유지하고 있던 청나라는 한족의 유전자가 득세하는 중앙집권적 국가의 틀을 갖추기 시작하고, 초기의 청나라와는 상당히 다른 모습으로 바뀌게 된다. 이후의 청나라는 우리가 알고 있는 중국으로 바뀌게 되고, 이 때의 청나라는 이미 초기의 모습을 거의 잃어버린 한족지배층이 주도하는 중앙집권적인 국가로써 공산당이 이끄는 근대국가로 탈바꿈하게 된다.

 

5-1. 그렇기 때문에 초기의 청나라를 기억하는 위구르, 티벳, 몽골, 만주 등지의 사람들은 지금까지는 나름의 생활방식과 자치권을 존중받던 생활에서, 하나로 통일된 중앙의 통치를 받아야 하는 그런 사람들이 되어버렸다. 이는 현대에도 꾸준히 벌어지고 있는 티베트, 위구르 등지의 일련의 사건들과 느슨한 연합제국에서 한족중심의 국민국가가 된 중국의 현재를 "역사적인" 맥락에서 이해하는데 어느정도는 도움이 될 지도 모르겠다.

 

6. 책 자체는 쉽게 읽히는 편이었으나, 좀 아쉬운 부분도 없잖아 있었다. 거시적인 맥락에서 청나라의 형성부터 끝까지를 다루는 데에 있어, 조금 더 큰 사건들을 위주로 다뤘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사실 청나라 혹은 동아시아사를 개괄적으로 제대로 모르는 나의 문제겠지만, 형성부터 끝까지를 다루는데에 비해서 거시적인 스케일의 이야기의 비중이 좀 작지 않았나 싶다. 

 

6-1. 일례로 3,4,5 장의 논의들 중 많은 부분은 각각 만주팔기, 러시아 외교문서, 조선과의 관계와 관련된 역사적 사료들을 근거로 계속 보여주고 있는데, 당연하게도 이 책에서 저자가 다루고 있는 핵심주장을 뒷받침하는 학술적 근거이니 다루는 것을 이해는 하겠지만, 과연 역사연구자가 아닌 내가 이정도로 디테일하게 알아야 할까? 싶은 부분들이 있었다. 물론 이는 다른 말로 하면 학술적으로 충실한 서적이라는 뜻일테니, 그저 학식이 짧은 나를 탓할 수밖에 없다. 

 

6-2. 일반적인 독자, 예를 들자면 나같은, 사람이 역사책을 읽는 이유는 당연하게도 옛날 얘기들이 재밌어서 읽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런 역사적 이야기들이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 어떠한 연관성이 있는지 궁금해서 읽는 것일게다.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현대중국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되지는 않지만, 어렴풋이 현대중국이 마주하고 있는 민족주의, 일국양제 등의 문제가 어떠한 역사적 맥락과 연결되어 있는지 정도는 눈치챌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저자는 청나라의 역사를 전공한 사람이지, 현대 중국 정치/외교/국제관계를 전공한 사람은 아니기에 거기까지 바라는 것은 나의 욕심일 수 있다.

 

6-3. "키메라의 제국"이라는 매력적인 잽!원투!로 독자들을 현혹시킨 후 이를 현대 중국의 제 문제로까지 훅!훅! 연결시킬 수 있다면 재밌었을 텐데, 역시나 이 책은 충실한 연구서에 가깝지 주장으로 가득찬 책은 아니기에 당연하게도 저자에게 여기까지 바랄 수는 없을 것이다. 언젠가 사석에서 만나게 된다면 현대 중국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실지도 모르겠지만, 뭐 만나뵙게 될 일이 있을것 같지는 않고... 

 

6-3. 청나라의 형성 및 발전에 대해서는 충실하게 이야기를 해주셨으나, 청나라가 어떻게 하다가 망했는지에 대한 서술은 좀 갑작스러웠다는 느낌이 든다. 물론 이 또한 청나라에 대해 잘 모르는 나와는 다르게 한국의 독자층이 이 주제에 대해서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청나라가 망했는지에 대한 내용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하여 생략하셨을지도 모르겠다.

 

7. 일독을 권한다. 다만, 주제가 주제이다 보니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에 쭈욱 읽지는 못했고, 100퍼센트 다 이해했는지도 잘 모르겠다. 청나라에 대한 나름의 관심사가 생기게 만드는 데에는 충분한 책인것 같고, 대중서라고 하기에는 애매하고 각주와 참고문헌이 꽤나 충실한 연구서에 더 가깝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청나라가 어떻게하다가 망했는지에 대해서는 완벽하게 그 부분만을 다룬 책은 아니지만, 아편전쟁과 태평천국의 난이 일어나던 무렵의 중국사, 일본사 등을 다루는 굽시니스트의 <본격 한중일 세계사>로 아쉽게나마 보충을 하는 것으로... 그렇지만 역시나 청나라가 왜 망했는가에 대해서만 다루는 것은 아니니(...) 왜 청나라가 망했는지에 대한 책은 천천히 찾아보는 것으로... 아, 물론 저자의 <병자호란, 홍타이지의 전쟁>은 샀다. 이 또한 언젠가 읽고 리뷰를(...)

 

(사족) 사실 꾸준히 읽고 있으나, 아직 다 읽지 못한 책은 다음과 같다. 세상에(...) 맨날 시작만 해놓고 진도가 안나가...  Matthew Desmond, <Evicted>, J.D. Vance <Hillbilly Elegy>, 피터 고프리스미스 <아더 마인즈>, Neil Gaiman <American Gods>(이건 진짜 읽기 시작한지 오래되었는데 왠지 모르게 책을 반쯤 읽어놓고 진도가 안 나간다), 박훈 <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아, 이북으로는 권도균 <스타트업 경영수업>과 진천규 <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함께 흐른다> 읽고 있다. 19년도에 읽고 리뷰를 아직 못 쓴 책은(...) 미묘 <아이돌리즘>, 김민섭 <아무튼 망원동>, 주성하 <평양 자본주의 백과전서> 이다. 분발해라 나새끼(...) 왜 리뷰를 얼른 얼른 쓰지 못하지...? 어차피 글 퀄리티도 좋지도 않으면서...ㅠㅠㅠㅠ 

청나라 키메라의 제국, 민음사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