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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정, <만주 모던>

by 박댐 2019. 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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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 모던 : 60년대 한국 개발 채제의 기원 양장본, 문학과지성사

0. 이 책을 산 건 2016년 중순인가 무렵이었던 것 같다. 사실 그 때쯤 빠져서 열심히 초중반부를 읽고, 그 해 과정남 연말 결산에서 소개도 했었는데, 책을 완독하지는 못했었다. 책은 내 돈주고 샀고, 당연하게도 문학과지성사가 나랑 연관이 있을리 없으니(...) 그냥 읽고 싶어서 읽은 책이 맞다. 아마 근 몇년간의 내 관심사를 따지자면 결국 어떻게 "근대화"라는 것이 이뤄졌는지, 어떻게 "제국"이라는게 만들어졌는지, 식민지(...) 주변부(...)라는 건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근래에 최애하면서 읽고 있는 시대 배경의 이야기는 결국 굽시니스트의 한중일 세계사 얘기의 기바닝 되는 1800년대 후반에서 1900년대 초반쯤의 그 무렵이다... 뭐 여튼 그게 중요한게 아니고 몇 마디 보탤 깜냥이 되는 인간은 아니지만 책을 다 읽은 김에 오늘도 간다 인상비평...! 저자에 대한 소개는 잘 모르니 일단 넘어가야 할 것인데, 현재는 동아대 총장으로 계시는 것 같고, 특이하게도 소속 과는 사회학과이시다. 이 책 이전에도 만주학회를 만드시기도 했다고 하고, 만주와 관련된 책들을 내셨다고 하는데, 난 일단 이 책에 대해서만 이야기... 

 

1. 일단 주제 자체는 굉장히 흥미롭다. 아마 21세기를 살아가는 비-전공자의 입장에서 만주국이라는 건, 일본의 괴뢰정부였다는 정보 외에는 정우성, 송강호, 이병헌이 나왔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만주 웨스턴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다이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저자는 일반대중들에게 그다지 익숙하지는 않은 만주를 일제 치하에서 조선인들이 "기회의 공간"으로 여겼었고, 실제로 무시하지 못할 만큼의 꽤나 많은 조선인들이 만주로 이주해서 살았음을, 그리고 그들이 단순노동에만 종사했던 것이 아니라 만주국을 유지하는 데에 있어 꽤나 중추적인 역할을 했음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리고 그 때 만주국에서 여러가지 일을 했던 사람들이 향후 60년대 이후 박정희 정권 하에서 "국가 만들기"에 적극 동원되어 만주국에서의 경험을 십분 활용하여 지금의 한국을 만드는데 기반을 다지는 일들을 많이 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2. 실제로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만주국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현대사에 영향을 끼친 인물들은 딱히 한국근현대사나 정치사에 관심이 없더라도 이름을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사람들이다. 박정희에서부터 시작해, 안익태, 백선엽, 최규하 등등 한국 현대사에 영향을 끼쳤던 정치인 및 군인들 뿐 아니라 문화인, 예술인들까지도 만주국에 거주하거나 체류했던 경험이 있음을 이 책은 여러 장에 걸쳐 꾸준히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이 만주국에서 했던 일들과 경험들이 어떤 형식으로 60년대 한국에서 재현되었음 또한 보여주고 있다. 

 

2-1. 박정희 시대의 개발독재 체제-예를 들자면 5개년 경제개발계획-를 소비에트식 개발독재 체제라고 서술한 책이나 뉴스 기사들을 읽었던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저자는 박정희 시대의 개발독재 체제의 연원이 물론 소비에트식이라는 이야기를 부정하거나 하지는 않지만, 원류는 그곳일지 몰라도 세세한 체계 자체는 만주국에서 빌려왔음을 주장하고 있다.

 

2-2. 저자는 애초에 책의 처음부터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신속과 근면"의 원류를 만주국에서 찾고 있다. 물론 이 책에서도 언급하듯 저자는 미군정의 영향이나 조선 총독부의 영향이 없었다고 하지는 않지만, "만주국식 에토스"가 60년대에 있었던 개발독재 체제의 동력이었음을 꾸준히 반복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3. 그러기 위해서 저자는 책 초반부터 끝까지 꾸준히 사회의 온갖 면들에 대한 자료들을 집요하리만치 모아서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거 봐! 이래도 설득이 되지 않니?"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이 정도로 집요하게 달려있는 각주와, 양만 봐도 어떻게 저걸 다 읽었지 싶을 정도의 참고문헌들을 보다보면 대략 정신이 멍(...)해지는 것이다. 다루는 시대는 30년대와 한국의 60년대이지만, 다루는 분야는 정치, 경제, 사회 뿐 아니라 스포츠, 음악, 영화까지 사회의 거의 전방위를 다루고 있으며, 다루고 있는 공간 또한 만주에 국한되어있지 않고, 조선반도, 일본, 중국을 넘나들고 있다. 

 

3-1. 개인적으로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은 어떻게 부산이 일본제국과 만주/대륙을 잇는 입구로써 기능하면서 폭발적으로 성장했는가 하는 부분이었다. 제국의 심장부인 도쿄부터 해서 만주국까지 가는 철도를 잇는 도시로써의 부산이라니...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이었던 것...

 

4. 솔직히 이 책에 대해서 뭔가 말을 하기가 부끄러울 정도로 책이 담고 있는 내용 자체도 충실하고, 그에 더해서 각주 및 참고문헌도 굉장히 충실하다. 저자는 이 책이 나오기까지 10년이 걸렸다고 저자의 말에서 쓰고 있는데, 왜 10년이 걸렸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왠지 저자가 그 동안 꾸준히 만주와 관련되어 모아오고 있던 모든 자료와, 써왔던 저작들을 한꺼번에 집대성한 느낌의 책이 아닐까. 실제로 이 책이 말하고 있는 중심 메세지는 의외로 간명하다. 우리가 아는 한국을 만든, 즉 6~70년대 박정희 정권 치하의 개발독재체제의 원류는 어디이며 이들은 그걸 어디에서 배워왔을까/참고했을까/베껴왔을까? 저자는 그 중요한 뿌리가 만주국에 있음을 주장하며, 그 중요성이 미군정의 영향이나 조선총독부의 영향에 못지 않게 중요함을 책 내내 주장하고 있다. 

 

5. 이 책의 주장은 앞서 말했듯 외려 단순하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의 입장에서는 그런 주장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나서는 꾸준히 저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사료/자료들의 나열을 꾸역꾸역 버텨내며 읽는 것 외에는 다른 수가 없다(...) 아마도 나는 그래서 중간에 읽다가 지쳐서(...) 그만 읽었던 것 같다. 예를 들자면 이 책의 주요 서술은 다음과 같다. "60~70년대에 A와 B가 주축이 되어 한국에서 C위원회를 만들고 D프로젝트를 했다. 근데 그 연원을 따져보자면 그건 만주국에 있다. A와 B는 젊은 시절에 만주국에서 E와 F를 하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고, 그 때 만주국은 이러저러했기 때문이다" 라는 서술이 반복된다는 느낌적 느낌이다. 

 

6. 물론 이 주장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참 재밌고 읽었고, 오히려 이 책을 읽고 나서 이 주장에 굉장히 설득이 되는 바였지만서도, 책 내내 저런 주장이 계속 반복되고 그를 뒷받침하는 자료들이 무지막지하게 뒷받침 되는 구조가 반복되다보니 내가 지금 연구서/책을 읽는 것인지, 교과서/사전을 읽는것인지 헷갈리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6-1. 30년대 만주의 이야기를 하다가 60년대로 자꾸 점프를 하는 것도 당연하게도 만주국과의 연관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책이니 어쩔수 없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래도 뭐랄까...이승만 정권이라던가, 미군정 등의 연속성 자체가 그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좀 찜찜했는데... 이 글을 쓰다가 저자 분의 인터뷰를 보았는데, 이 분은 이승만 정부의 영향력 자체를 굉장히 낮게 보는 분이라는걸 깨달았다(...) 그러면 또 납득이 되기도 하고... 아, 그 인터뷰는 여기.(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604141374202398) 아예 이승만 정부가 한게 뭐가 있나. 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시는 것 또한 새로웠다. 

 

7. 당연하게도 일독을 권한다. 내가 뭐라고 이 책의 학술적 깊이와 엄밀함을 판단하겠나. 훌륭한 책이고, 그만큼 훌륭한 연구주제이고, 이 책이 담고 있는 각주와 참고문헌들만 다시 들입다 파도 누군가는 연구를 할만 하겠다 싶을 정도로 이것저것 보신 자료의 양이 어마어마한 것 같다(...) 개인적으로 나는 절대 엄두도 못내고, 하지도 못할 종류의 작업이기때문에 무한 리스펙트 할 뿐이다. "만주국식 에토스가 60년대 개발독재체제의 원형이다"라는 주장의 대담함과 강렬함을 뒷받침하는 자료들이 양적으로 어마어마한것과 별개로, 너무 방대하고 다양한 주제(스포츠, 음악, 문화 등등)을 전부 다루시려다보니 독자의 입장에서 한가지 아쉬웠던 점은 이 책 자체가 "우표수집책"(말고는 딱히 뭐라고 표현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처럼 느껴졌다는 점이다. 이 책이 펼쳐놓은 엄청 나게 다종다양한 주제들을 하나씩 잡아서 파고드는 다른 저작들이 분명 있을 것인데...그런것들까지 들입다 파기에는 내가 너무 부족한 인간이고(...) 한국의 에릭홉스봄이 나타나 "남한건설의 시대"같은걸 만약 써준다면 이 주제가 분명 깊게 다뤄지지 않을까 싶고 뭐 그런 것이다.... 

 

8. 여러모로 훌륭한 책이었다(...) 보니까 이 책이 나왔을때 단체 서평회 같은 걸 진행하신 분들도 페친인것 같고, 이 책을 읽으신 분들도 꽤나 되는것 같은데... 나중에 혹여나 오프라인에서 만나게 된다면(...) 이것저것 여쭙는 것으로...

 

(뱀발) 이와 연결하여 다음에 읽어볼 책은 김건우, <대한민국의 설계자들> 이라는 책이다. 한별이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한별이는 만주모던-대한민국의 설계자들-경부고속도로(전치형 선생님 논문)-내일의 종언-아수라장의 모더니티 로 읽으면 하나의 서사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중간중간 끼워넣을 책들이 분명 있을 것인데...언젠가는 하나의 서사를 엮어내는 책 리스트를 만들어보는 것도 재밌을지도(...) 

 

만주 모던 : 60년대 한국 개발 채제의 기원 양장본,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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