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김영준, <골목의 전쟁> -1부

by 박댐 2019. 2. 6.
반응형
골목의 전쟁:소비시장은 어떻게 움직이는가, 스마트북스

이 글은 제가 2017년도 12월 17일날에 제 페이스북에 올린 글입니다. (https://www.facebook.com/daein.park.560/grid?lst=556235393%3A556235393%3A1549456558)

페이스북에서, 그리고 네이버 블로그를 통해 경제/경영 쪽 지식을 항상 공유해주시고 계시는 김영준 선생님의 <골목의 전쟁>을 읽었다. 여러가지 의미로 이 책이 비집고 들어가고 있는 시장이 좀 특이하다고 보는데, 한국의 서점에 가서 경영/경제 쪽 서적들을 쭈욱 둘러보고 여러개로 분류를 해보자면 대략 다음과 같다고 할 수 있겠다.

  1. 해외 경제학/경영학 구루나 대가들이 쓴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했다고는 하나 마냥 쉽지만은 아니한 그런 책

  2. 트렌드 리포트+미래예측(SERI라던가...) 무슨무슨 시장 보고서 등등의 실용서 비스무리한 보고서

  3. 기업에서 일해본 혹은 성공한 창업자 들이 쓴 자서전/전기 등등 (나는 이렇게 해서 성공했다! 성공한 ~~의 비결! 같은 류의 책들이겠다)

  4. 마케팅/최신 경영기법 분석 등등의 책

  5. 투자 관련 책들

그러나, 김영준 선생님의 <골목의 전쟁>은 저 어디에도 분류를 끼워넣기가 애매한 책이다. 나쁜 의미가 아니라 좋은 의미로. 물론 이 책을 통해 얻은 통찰력을 투자에 쓸 수 있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또 의미가 있겠지만 이 책은 그런 책은 아니다. 나는 사실 이런 종류의 책이 한국에서 나올 수 있으리라고 생각을 딱히 해본적도 없거니와, 이 정도의 책이 출판될만큼의 토양이 한국에서 갖춰졌나보다 해서 좀 놀랍기도 했다. 굳이 거칠게 요약하자면 이 책은 경제학자를 위한 책도, 경영학도를 위한 책도 아니다(물론 그들이 이책을 읽는다고 도움을 얻지 못할것이란 이야기는 아니다.) 이 책은 말그대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네 일반인들, 서민들, 동네 장삼이사들을 위한 책이다. 모두들 어딘가에서는 "생산자"이지만 하루의 많은 시간을"소비자"로 보내며 수많은 선택들을 하는 우리들 말이다. 그렇다, 이 책은 어느날 말도 없이 오른 치킨값을 욕하며 평소에 주문하던 단골 치킨집을 욕하고, 신문에 나오는 "커피 원가는 XX원, 스타벅스 커피는 YY원, 일본이나 미국과 비교하면 한국이 더 비싸" 같은 기사에 분노하는 우리들을 위한 책이다.

이 책에서 중점적으로 이야기하는 것들 중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한국식(헬조센식) 자영업에 관한 점들이었다.

(1) 한국의 자영업자들은 원래 자영업자들을 잘 할만한 사람들이 딱히 아니다.(미생에서 말하듯 회사도 치열한것 같지만 밖은 지옥요...)

(2) 소비자들은 생각보다 뭘 잘 모른다(...)

(1) 동네 치킨집이나 밥집이던 가서 얘기를 해보면 상당히 많은 사장님들이, 원래 업이 요식업과 관련이 없었던 경우를 보게 된다. 그럼 이 많은 치킨집(...)은 어디에서 왔는가? 답은 어쩌다보니 자영업계로 "내몰린" 사람들이 어떻게든 먹고 살려고 하다보니 요식업에 뛰어들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경쟁력은 어느정도나 될까? 책에서도 지적하듯 사실 요식업이라던가, 자영업은 그렇게 수월한 일이 아니다. 일견 쉬워보이는 길거리 음식장사만 하더라도, 백종원의 푸드트럭(http://program.sbs.co.kr/builder/programMainList.do?pgm_id=22000010539)만 몇화 봐도 그냥 음식만 잘 만들어서는 장땡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대기인원이 많아지면 안되니, 최소한의 시간으로 조리해내는 레시피, 미리 조리가 간단하도록 손질된 재료, 위생관리, 식재료 조달, 인구 유동량이 많은 입지 선정 등등 혼자 하나부터 열까지 신경써야 하는 종합예술에 가까운 것이 길거리 음식장사임을 알 수 있다. 길거리 음식장사가 이런데, 식당은 어떻겠는가? 당연하게도 요식업에 전문성이 그닥 크지 않은 창업자들의 말로가 어디인지를 이 책은 잘 설명하고 있다.

(1-1) 가끔씩 오래된 유명한 식당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들은 어쩌다가, 할 게 없어서, 등 떠밀려 창업한 사람들이 아니다. 자신들만의 철학과 운영방식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통해 잘되면 프랜차이즈 창업주가 되거나, 아예 프랜차이즈조차 열지 않는다. 이들의 운영방식은 단순히 돈만 있다고 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며(일식집 요리사가 본인의 이름을 건 일식집을 열기까지 몇년의 수련을 겪어야 할까?) 그 나름 대로의 엄밀한 "전문성"을 기반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 "전문성" - 요리의 기술과 식당 운영방식을 기반으로 한- 과 "취향" - 인테리어, 식기배치, 음식이 나오는 순서, 서빙하는 방식 - 등등이 모두 갖춰졌더라도 성공하기가 상당히 힘든데, 대부분의 한국 자영업자들은 이런 부분들에서 부족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부르디외의 <구별짓기>나 보드리야르의 <소비의 사회>를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나, 분명 생각이 날 수밖에 없다. 냉철하게 이야기해서 한국에서 요식업 창업에 뛰어드는 명퇴한, 혹은 퇴직후의 5060들은 명실공히 한국에서 문화적 혜택을 딱히 받지 못한 세대 아니던가(...)

(1-2) 그러니까 이 자영업자들이 결국 갈 곳은 업자들(...)이 소개하는 "요새 뜨는", "요새 젊은애들이 좋아한다"는 유행하는 XX아이템(대왕 카스테라라던가...연어무한리필이라던가...)이 될 수밖에 없고, 아무래도 나이가 들어 현대의 소비트렌드를 잘 못 따라가는 사람들은 딱 바로 망하는 각이 나와버린다는 것이다.

(1-3) 이 뿐 아니라, 더 큰 문제는 아이템 선정을 잘 해서 유행을 선도하는 그 무언가를 만들어냈다고 하더라도 시장에서 독점적인 위치를 차지해서 "꿀을 빨기"가 헬조센에서는 극도로 힘들다는 점이다. (1-1)에서 얘기했듯 전문성과 취향이 결여된 창업자들 사이에서 유행을 선점한다고 하더라도 이게 절대 오래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막말로 음식이 무슨 삼성 스마트폰 기술도 아니고 특허내고 상표권내고 어떻게 할 껀가... 애초에 한국은 기업이 특허, 상표권 다 들고 있어도 이리저리 베껴가는 나라인디... 한국은 어떻게든 자영업을 해서 먹고 살려고 눈이 벌개진 사람들이 널려있고, "뭐가 된다" 소문만 나면 벌떼같이 사람들이 달려들기 때문에 초기에 단타성으로 유행을 만들어낸 몇몇만 돈을 벌고 나머지는 손해를 보게되는 사이클이 반복이 된다. 마치 주식에서도 기관이나 외국인들만 돈을 벌고 개미들은 손해보듯이(...)

(2) 그렇다면 창업주들이 해야할건 나름 명확한것 같다. 1)등떠밀려 창업하지 말고 2)취향을 기르고 3)전문성을 기르자! 아닌가?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 책에서 지적하는 점은 한국 소비자들의 행태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한국에서 수없이 유행하다 사라진 다이어트 방법이나 건강식품들을 보라. 몇년전에는 뭐가 암에 좋다 그렇게 난리 치고 뭐가 좋다 뭐가 좋다 하던데, 그거 요즘에도 살아남은거 있나? 딱히 없다. 사실 한국만 그렇진 않다. 사람은 원래 그렇게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라, 아무리 옆에서 말을 해도 결국 자기 맘대로 하는 존재 아니던가? 소비자들이 창업주들의 전문성과 취향을 이해해주면 좋겠으나, 이 책에서는 사실 한국 소비자들의 수준 그 자체가 그리 높지 못함을 지적한다. 피나는 노력을 기울여 창업주가 가성비가 훌륭한 7천원짜리 메밀국수를 만들어도 소비자들은 그 7천원짜리 메밀국수와 비교할 때 맛은 덜하지만 양은 "착한" 5천원 짜리 메밀국수를 선호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2-1) 가성비를 따지고, 맛은 좀 덜해도 싸고 양많은걸 추구하게 되는 소비자들이 대다수가 되어버린다면, 중간지대(그러니까, 중간정도의 가격에 중간정도의 품질. high-end 레스토랑 급은 아니지만 동네 백반집보다는 나은...)에 위치한 요식업주들에게는 두가지 선택만이 남는다. 질을 포기하고 양과 낮은 가격을 추구하던가(착한 가격, 가성비를 홍보하면서 쓰게 되는 싼 재료), 아예 가격을 많이 높여서 하이엔드/고급화된 시장으로 가거나. 물론 소비자들의 안목이 먼저인지, 창업주들의 자질부족이 먼저인지 선후관계를 따져봐야한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이렇게 선택지가 2개밖에 없어지는 상황은 시장 전체로 보더라도 좋지 않다. 다양한 가격대에 다양한 품질의 상품이 존재하는 시장이 훨씬 역동적이고 혁신이 잘 일어나지 않겠는가? 책에서 지적했듯, 이렇게 양극화가 일어나게 된다면 유일한 시장의 "좋음의 기준"은 상품의 가격뿐일 것이고, 이는 악순환을 가중시킬 뿐 완화하진 못할 것이다.

(2-2) 이 뿐 아니다. 소비자들은 쉽게 커피원가, 치킨 원가를 보고 분노를 하는데 이는 제품의 가격결정 구조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이 책은 또한 지적하고 있다. 이거는 스타트업을 하면서 느끼게 된 이후로 뭘 하나 사더라도 어떻게 이 가격이 나올까 생각을 해보다 보니 개인적으로도 여실히 느끼고 있다. 통상적으로 "먹는 장사"라고 불리우는 장사의 마진은 30퍼센트라고 얘기를 하는데, 우리나라 에서 요식업을 한다는 건, 재료 준비시간 빼고, 남들 밥먹는 시간에 밥 못 먹고 다 노는 때 못 놀면서, 1주일에 약 6~7일을 대에충 12시부터 8~9시까지 풀타임으로 고된 주방노동을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재료 준비시간+청소+뒷정리 시간을 더한다고 하면 들이는 시간의 양+노력 대비 버는 돈이 그렇게 크지도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대다수의 소비자들은 여기까지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로부터 비롯된 소비자들의 원가와 가격에 대한 분노는 창업주들의 전략적 선택의 폭을 제한하고 더 좋은 사업에 대한 노력과 욕구를 저하시키기만 할 것이다.

한국의 창업주들의 십중팔구는 사실은 사업할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로 시장에 나온 뭘 잘 모르는 사람들이며, 소비자들은 10명중 1명 꼴로 있는 훌륭한 사업자들이 받아마땅한 적절한 피드백을 주지 않는 엄한 아버지(...) 같은 사람들이라 사업자들의 기를(...) 죽이며, 딱히 진입장벽을 구축할수도 없고, 구축하기도 힘든 요식업 시장의 특성상 블루오션은 금방 레드오션으로 변해버리기 마련이다.

그러다보니까 이 책을 읽으면서, 굉장히 슬프기도 했다. 뭐 다들 본인이 언젠가 요식업에 종사할줄 알았겠는가(...) 어찌저찌 살아남을라다가보니까 그렇게 된거 아니냐...싶기도 하다.

솔직히 이 책을 읽으면서 사실 무릎을 치면서 감탄한 부분도 많았지만 암담하기도 했던 것이 사실이다. 어찌됐건 글이 너무길어지니 내 감상은 2부로...

골목의 전쟁:소비시장은 어떻게 움직이는가, 스마트북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