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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훈,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

by 박댐 2019.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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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훈,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 오월의 봄 (http://www.yes24.com/Product/Goods/69125689?Acode=101)

 

0. 작년 11월쯤, 저자이신 양승훈 선생님께서 피드백을 요청하셔서 원고상태로 있던 책을 미리 읽어보았었다. 읽고 나서 이런저런 코멘트를 드렸었고, 책이 거진 완성 되었으니 나올것이라는 이야기 또한 들었다. 1월말 가량 책이 나왔고, 감사하게도 책 마지막 감사의 말에 이름 석자가 들어가는 영광을 누렸다(...) 그리고 이 독후감/서평은 당연하게도 숙제 되시겠다. 원고를 읽고, 출판이 되고, 책까지 사인본을 받았으니 리뷰를 써드리는 것이 인지상정 아이겠슴까...
 
1. 저자는 정치학과 인류학을 전공하고 산업현장에서 일을 한 경력으로 본인이 겪어왔던 거제도와, 대우조선의 작업장을 여러 각도로 보여주고 있다. 나는 한전에서 오래 일하셨던 아버지 덕에 전국에 흩어져있는 한전 발전소를 따라서 발전소 주변 사택에서 살아본 적이 있고, 작업복을 입고 출/퇴근 하는 풍경을 봤고, 아버지 직장 동료의 아이들과 동네에서 놀던 기억이 있다보니 비록 거제도의 조선업을 기반으로 돌아가는 동네를 가보지 않았어도 이 책에서 묘사하고 있는 몇가지 풍경들은 자연스럽게 머리에 그려지기는 했다.
 
1-1. 이는 비단 한전이라는 거대 공기업만의 특성은 아닐 것이다. 큰 규모의 업장이 있고, 그 업장에 일하는 직원들을 위해서 어떤 형태로든지간에 회사에서 주거를 제공하는 회사들은 이 회사에서 묘사하는 풍경과 비슷한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예를 들자면 군대 관사에서도 약간 비슷하지 않을까(...) 계룡대라던가 자운대라던가 말이다...
 
1-2. 사실 공단이나, 공장과 가까운 동네에서 자라본 사람들이 아니라면 잘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IMF 이전만 하더라도 "공장에서 혹은 현장에서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아버지" 라는 이미지가 꽤나 보편적이었을지 몰라도, 다들 알다시피 IMF는 우리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으니까...
 
2. 이 책의 초반부는 산업을 통해서 만들어진 이주자들의 도시 거제도에 대한 설명부터 시작해서 회사를 통해 묶인 하나의 거대한 유사-가족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중반부, 후반부는 한때나마 잘 나갔던 세상의 많은 업계와 회사들이 그렇듯, 이 거대한 유사-가족 또한 세상의 흐름과 동 떨어져 꾸준히 혼자 잘 나가지 못하고 달라지는 환경에 따라 필연적인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고, 이루어져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 역사적인 서술과, 저자가 직접 거제도에서 5년간 근무하며 겪은 개인적인 경험이 꽤나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다.
 
3. 이 책이 가지는 강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대다수의 산업에 대한 책을 내 나름대로 거칠게 나누어보자면 다음의 두가지로 나눌 수가 있을 것 같다. 1)산업/투자/거시경제의 측면에서 업계 혹은 특정 회사의 과거/역사/.미래에 대해 다루는 책 2)노동자의 입장에서 작업현장이 얼마나 거칠고 고된지 일과 환경의 측면에서 접근하는 책. 이 두가지인데,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는 이 두가지 측면을 동시에 다루고 있다.
 
3-1. 그렇기 때문에 어떤 부분은 한국 조선업 뿐 아니라 국가적 정책이었던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에 대한 역사적 해석으로 보이기도 하며, 어떤 부분은 실제로 노동자들과 교류가 있었던 사람의 입장에서만 서술 가능한 "업장" 내부의 이야기로 보이기도 한다. 단순하게 거시적인 측면과 미시적인 측면을 다루는 것에서 벗어나서, 이 책은 또한 이 "업장" 주변을 둘러싼 주변부의 이야기, 아들딸들, 외국인 노동자들, 남편이 비운 집에 있는 엄마이자 아내인 사람들의 이야기 또한 촘촘하게 엮어낸다. 이는 다른 여타의 책들이 가지지 못하는 이 책만의 독특한 강점이긴 하다.
 
4.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하나의 분석보고서로 읽히기에는 애매하고, 그렇다고 엄밀한 문화인류학 현장연구서로 읽히기도 애매하다. 분석보고서가 되기에는 메타분석, 거시적인 분석 자체가 주가 되는 책이라 말하기 힘들고, 문화인류학 현장연구서가 되기에는 인터뷰라던가, 당연하게도 이미 많이 나와있는 노동현장을 분석해낸 학술적인 논의와 맞닿아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책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감히 말하건데 이 책의 장점은 이 모든것을 한꺼번에 다 버무려 넣어보려고 했던 그 시도 자체에 있다. 분명 사람이 사는 공간인 곳에 대한 분석보고서임에도 사람의 이야기가 빠져있는 증권사 애널리스트 보고서와, 사람의 이야기만 너무 나와서 거시적인 레벨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고가는지 파악하기 힘든 르포의 그 어느 중간 지점 쯤에 이 책은 위치해있다. 혹자는 연구서로는 부족하고 대중서라 보기에는 어려워 왜 굳이 이런 책을 썼는가 하며 질타할 수 있겠으나, 이는 어떤 종류가 되었건 대중서를 집필하는 연구물을 조금이나마 먹은 사람들의 숙명이 아닌가 싶다(...) 나는 재밌게 읽었다(...)
 
5. 관련업계인들 뿐 아니라 조선업 뿐 아니라, 한국의 제조 대기업 관련 업종에 종사했던 사람이라면 거의 모두가 흥미롭게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1차 벤더, 2차 벤더, 하청 노동자, 직영 등등의 이야기들은 비단 조선업에만 관련된 이야기는 아니니까 말이다. 아, 건설사에 다니는 사람들 또한 재밌게 읽을 수 있을것이다...
 
6. 개인적인 바램으로는 이 책은 두권으로 쪼개서 냈어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다. 거시경제 베이스의 분석적인 이야기들을 한곳에 몰아넣고, 다소나마 문화인류학적/사회학적 분석들을 한 곳에 몰아넣어... "산업도시 거제의 흥망성쇠" 라는 책과 "중공업 가족 이야기" 라는 두 권의 책이 나왔어야 하는게 아닌가 싶은데, 아마 그렇게 냈더라면 두 권 모두 지금처럼 팔리진 않았을 것이다(...)
 
7. 저자에게는 개인적으로 이 책에는 부록이 필요하다고 말한적이 있다. 산업/제조/공단/공장 등등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혹은 이 책에서 묘사하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어색한 사람들에게 더 잘 다가가기 위해서는 함께 읽어볼 만한 컨텐츠 리스트를 함께 제공하는 것은 어떤가 하고 말을 했었다. 그냥 대충 생각나는 것만 이야기를 해도 <빌리 엘리엇>, <땐뽀 걸즈> ,<나, 다니엘 블레이크>, <로저와 나>등이 생각이 나는데, 영상물 뿐 아니라 다른 좋은 연구서나 논문들과 함께 패키지를 만들어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8. 사실 1인 남성 생계 부양자가 존재하는 4인 가족의 모델은 IMF 이후로 한국에서 거진 없어졌다고 생각했었는데, 거제에서는 이 모델 자체가 그래도 꾸준히 살아남아있었다는 것이 아마 어떤 사람들에게는 신기할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신기했었다(...) 물론 이 모델 또한 엄청나게 맞는 말은 아닌게, 우리의 어머니 세대들은 부업 또한 많이들 하셨었더랬다. 애초에 모든걸 설명해주는 모델은 아니지만, 여튼... 감히 말하건대, 이 책은 그런 1인 남성 생계부양자 정상가족 모델이 해체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페미니즘서적처럼 독해될 수 있는 부분이 있지 않은가 생각도 든다. 특히 남자는 거제로 돌아오고, 여자는 거제를 떠난다는 분석. 여성에게 주어진 역할은 주부 혹으 여상 졸업후 조선소 취직 등을 볼 때 더더욱이나 산업도시 또는 공단을 중심으로 한 여성학적 분석이 많아지면 흥미로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이 또한 충분히 존재하는데 내가 모르고 있는것이겠지(...)
 
9. 한국은 어떻게 보면 아직도 성장을 못하고 퇴보(태 보 해) 한다거나, 현재 상황보다 모든게 더 나빠질 것이라는 생각을 아직도 사회적으로 잘 하는 나라는 아닌것 같다. 어찌됐건 한국은 꾸준히 성장을 해왔고, 자그마치 삼성과 LG, 박지성의 오른발과 왼발 그리고 세계 피겨스케이팅 챔피언 김연아를 가진 나라 아닌가(...) 그러나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것이, 옛날에 먹혔던 한국이 국가적으로 취했던 많은 전략들은 이제 더이상 먹히지 않게 되었다. 국가가 책임져주지 못한 시민들의 복지를 회사로, 그리고 가족에게로 떠넘겼던 전략(이건 무전략이라고 해야하려나)은 이제는 힘을 잃었다. 바야흐로 각자도생의 시대이고, "열심히 일하면 4인가족을 건사할수 있다"라고 모두가 생각했던 시절도 이제 끝났다. 아직까지는 문화적으로, 사회적으로 저런 인식이 중장년층 위주로 박혀있을 수 있겠으나, 21세기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들 중 저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잘 없을 것이다.
 
10. 연애는 필수지만 결혼은 선택이고(이건 김연자 센세의 아모르파티 가사이기도 하다), 결혼을 (만약에라도) 하게된다면 맞벌이는 필수에, 내집마련과 패밀리카 구입보다는 소확행과 해외여행이 삶의 목표인 사람들이 경제의 주역이 되어가고 있고, 아마도 조만간 경제의 주역이 될 것이다. 소위 말하는 "4차산업혁명"시대에 걸맞는 이 시대의 삶과 일이란 무엇일까? 확실한 건 지금까지 한국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해왔던 조선업은 이대로는 안된다(...)는 것이 이 책의 결론이다. 다소 식상한 이야기이지만 모든 문제해결의 시작점은 문제를 인식하는데 있으니(...) 부디 부울경쪽 정치인+공무원들은 이 책을 읽으시길 바라고, 부울경 아니더라도 지역 기업 떠난다고 외치는 군산, 광주 등등의 지자체 소속 정치인+공무원들 또한 이 책들 읽으시구,,, 정규직 위주로 구성된 노조들 쪽에서도 우리 양승훈 센세 불러다가 좋은 말씀 들으십쇼...
 
뱀발)숙제 완료(...) 이렇게까지 길게 쓸 생각은 없었는데 쓰다보니까 글이 너무 길어졌다... 내용도 없는데 글이 너무 길어서 죄송합니다...ㅠㅠㅠㅠㅠㅠ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산업도시 거제 빛과 그림자, 오월의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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