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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봉준호, <기생충> 촌평

by 박댐 2019. 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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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기생충> 감상평. 스포가 있다는 생각은 안 들지만 여튼... 보실 분들만 보셔요. 
 
0. 내가 인상깊게 들었던 대사는 송강호가 자기 아들한테 "야~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라고 했던 말과 송강호가 눈을 가리면서 했던 "제일 좋은 계획이 뭔지 아냐, 무계획, 노플랜. 계획은 안 세우면 뭔가 잘될일도 없고 안될일도 없고 편하다" 라는 대사였다.

 

1. 개인적인 생활에서 계획을 안 세우는것은 아니다. 분명 1주일 단위 혹은 1일단위로 뭘 해야한다 정도의 계획은 세우는 편인것은 맞는데, 계획을 세우는게 무슨 의미가 있나 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면서 안 세우기 시작한건.... 계획은 실행을 할 수 있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의미가 생기는데, 내 인생에서 내가 세운 계획을 그대로 실행하여 결과를 내는 것이 그닥 쉬운일이 아닐뿐더러 심지어 내 의지와 노력과는 상관이 없다는 걸 깨닫게 되면서부터인 것도 같다.

 

2. 그래서 일전에도 애기했듯, 1달 후, 2달 후에 무슨 행사가 있으니 참여해주십사 하는 요청에 일관적으로 거절을 해왔고 앞으로도 꾸준히 할 생각인 이유는 정말 내 인생에서 그 정도 시간 후는 먼 미래라서, 전혀 계획이 없기 때문에 그렇고, 만들고 싶은 의지가 안 생기기 때문이다.

 

2-1. 공공기관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몇달 후의 계획, 반년 후의 계획이 있고, 심지어 그 회의에 누가 참석하는지도 알고 있고, 그대로 진행이 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의 신기함(?)이 아직도 생각난다. 어떻게 저런 일이 가능한것이지? 라고 생각했었지만, 그것이 바로 계획한대로 실행에 옮길수 있는 자리에 있어서 그래도 되는 사람들과, 모든것이 유동적인 사람들의 차이이겠다 싶기도 했다.

 

3. 그렇다고 아예 계획이 없는것은 아니다. 분명 내가 속해있는 조직(회사)은 이뤄내야할 목표가 있고, 주기적으로 그걸 이뤄내기 위해서 해야할 일들이 당연히 있다. 실제로 회사내에서 여러 업무 진행상황이 어떻게 되는지 스케줄 체크를 하는 것도 약간이나마 해보기도 했었다. 그렇다보니까 회사에서 하는 일들에 대해서는 나름의 타임라인과 계획, 전략을 짜는건 오히려 익숙해도 인생에서 계획을 짜는건 어떤 중/장기적인 시각에서 짜기보다는, 다른 일들을 하면서 비는 시간에 개인적인 일들을 잔잔바리로 끼워넣는 식이 되다보니 큰 의미에서 인생에 중장기적인 계획은 전혀 없다(...)

 

3-1. 생각해보면 이런 방식이 딱히 엄청 건강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근데 뭐 살다보니까 일케 된걸(...)

 

4. 계획을 세우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다. 근데 그 계획을 실현 시키고 실제 작동하게 만드는 데에 들이는 노력과 자본과 네트워크는 계획을 세우는 행위와는 별개의 일이다. 그러다보니 계획을 세운다는 일은 현재보다 미래가 조금이나마 나아질수 있다는 희망의 표현이며, 본인의 노력으로 이정도까지는 내가 내 생각을 현실화시킬수 있겠지 하는 의지의 발현이지 않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꾸준히 다음 "계획"이 뭐냐고 묻는 송강호의 자식들과 "계획이 다 있다"라고 안심시키는 송강호가 대비되어보였다.

 

5. 자식들은 아무리 자신들의 처해있는 현실이 그다지 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도 계획을 세우면, 그리고 그 계획대로 뭔갈 하면 된다고 생각을 하는 것만 같아서 괜시리 짠했다. 그래서 "야~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라고 하는 송강호의 말이 나에게는 "야~ 너는 이렇게 빠져나갈 구멍이 없어뵈는 상황에서도 미래에 대한 희망과 그 희망을 실현시키고자 하는 의지가 있구나!"로 들리더라.

 

5-1. 사실 그래서 송강호의 저 말투, "야~너는 계획이 있구나" 는 양가적인 감정이 들게 만드는 대사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자식을 응원하고, 희망을 가진 자식을 칭찬하는 것처럼 들리는 아버지의 대사같기도 하다가도, 에라이 인간아 아직도 헛된 희망을 버리지 못했구나라고 책망하는 것 같기도 했다. 딱히 나아지기보다는 현상유지조차 급급한 사람에게 "계획"이 있고 없고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6. 가끔 어딘가에서 뭔가 말을 해달라고 해서 가면, "뭐라도 해라, 계획은 큰 의미가 없다. 실행이 중요하다"라는 말을 하곤 하는데, 앞으로는 이런말도 하지 말아야 겠다 라는 생각을 했다. 계획과 실행을 할 의지와 배경이 안되는 사람도 당연하게도 있을수 있는데, 하루하루 버티면서 살아가는 거 자체가 쉽지 않은 거에 대해서 내가 뭘 안다고(...) 하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말이다.

 

7. 왠지 모르게 찝찝했던 기분이 들게 만든 영화였고, 배우들 연기도 잘했던것 같고, 뭐 재밌게 보았다. 두번 볼 것 같지는 않다. 영화를 보고나서 이런저런 리뷰를 찾아보았는데, 그중에 가장 인상깊게 본 글은 "민중주의적 전통"과 운동권에 대해 써주신 분의 글이다. 그 링크는 다음으로(https://begray.tistory.com/499?fbclid=IwAR3AfpHoLkKrCjU_ha29B61w0fz3gg1rCT1sP9PO6AnTV2OqHpY-8O5sgy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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