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이혜미 기자님이 쓰신 <착취도시, 서울>을 읽었다. 이혜미 기자님은 한국일보에서 기자로 일하고 계시고, 2019년 <지옥고 아래 쪽방> 이라는 훌륭한 기사를 써내셨다. 해당 기사의 링크는 이곳(https://bit.ly/2Sys6n9). 이 시리즈 기사를 읽은 덕분에 지지부진하던 매튜 데스몬드의 Evicted 읽기에 가열차게 속도를 내어 읽고 인상비평을 쓸 수 있었다. 책은 돈 주고 샀다.
1. 이 책은 그러니까 <지옥고 아래 쪽방> 기사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는 책이며 한정된 신문 지면의 특성상 다루지 못했던 뒷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는 그런 책이다. 책은 1부와 2부로 나뉘어져 있는데, 1부는 말그대로 어떻게 <지옥고 아래 쪽방> 이라는 시리즈 기사가 나올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취재를 시작하게 된 계기, 취재를 하면서 겪었던 어려움, 취재를 하면서 만났던 사람들, 느꼈던 감정들이 날 것으로 느껴진다. 또한 차마 신문기사를 쓰면서는 인용하지 못했던 자료들을 주석으로 넣는다던가, 잘 보이지 않는 쪽방촌 주인들의 흔적을 찾아가는 과정의 지난함을 토로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빠져나갈 수 없는 정부의 공식적인 자료-등기부등본이라던가 정보공개에 인색한 공무원을 여러경로로 구슬려 입수한 쪽방건물 리스트라던가-와 발로 뛰어서 만난 동자동, 창신동 등의 쪽방촌의 주민들을 인터뷰한 자료들을 통해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에 엄연히 존재하는 빈곤의 한 단면을 여실히 드러낸다. 그리고, 그 빈곤의 한 단면이 한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구조적인 원인이 있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 구조를 만들어내어 유지시키고, 존속 혹은 상속시키는 명백한 주체들이 있음을 폭로하고 있기도 하다.
1-1. 마치 셜록홈즈나 범죄영화에서 폭력조직의 계보를 파헤치려는 형사들처럼, 저자와 저자가 속한 팀의 기자가 쪽방촌 등기부등본을 바닥에 펼쳐놓고 앉은 사진은 그 자체로 한국식 느와르 영화의 한 장면 같기도 하다(...) 굳이 저렇게 서류를 바닥에 놓고 검토해야 하나 싶은 약간의 삐뚤어진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이정도야 컨텐츠의 훌륭함을 생각했을때 그냥 넘어갈수 있다. 미쟝센(?!)으로써 나쁘지 않달까(...)
2. 쪽방촌에 사는 빈곤한 주민들은 집주인이 누군지도 모른다. 알게 모르게 누군가는 쪽방촌에 여러채의 건물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말이다. 그들은 현금으로 관리인에게 월세를 내고, 그 관리인은 현금을 모아다가 본인이 관리를 하는데에 대한 명목으로 얼마를 떼고 주인들에게 송금을 한다. 그래도 도시 한가운데에 슬럼이 명시적으로 존재하는 외국의 도시들과 달리, 한국의 빈자들은 존재조차 희미하다.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이 일상적으로 잘 갈일이 없는 지하철역과 가까운 고시원으로, 마천루 사이의 쪽방촌으로, 힙스터들이 "우와 한국에 이런 일이 있었어?"하면서 스트릿화보를 찍고, 밴드 혹은 래퍼 혹은 그 누군가들이 뮤직비디오를 찍을법한 여인숙 달방으로 숨어든다. 마치 <기생충>의 부자 가족이, 소위 선 너머의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 대해서 완벽하게 "무지"의 상태에 남아있고 본인들이 어떻게 이러한 구조에서 남을 착취하고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하는지 상상조차 하지 않는 것처럼, 자본과 권력을 가진 쪽방촌의 소유주들은 길거리에 내몰리기 직전인 사람들의 처지를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이용해 법에서 정한 최소한의 기본권에도 못미치기 십상인 곳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게 만들고 있다.
2-1.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매튜 데스몬드의 evicted를 여기서 다시금 떠올릴 필요가 있다. 물론 evicted는 미국도시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공간과 그 안의 사람들이 다르다뿐이지, 여러가지 원인에 의해 빈곤의 최전선에 내몰리게 된 사람들이 착취를 당하고, 어려움을 겪는 그 구조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다. Evicted 안에서 볼 수 있는 밀워키의 빈민들이 강제퇴거를 두려워해 집 관리인들에게 목소리를 쉬이 높이지 못하는것처럼, 서울 쪽방촌의 사람들 또한 그렇다. 밀워키의 빈민들이 절대로 게으르거나 본질적으로 못된 사람들이라 가난해진 것이 아니고, 일평생 여러가지 노동을 해오고 있음에도 빈곤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서울 쪽방촌의 주민들 또한 어떤 형태로든 노동을 꾸준히 해나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간신히 몸을 누일수밖에 없는 쪽방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있다. 일개인의 노력과 불운을 탓하기에 이들을 구속하고 있는 착취의 구조는 너무 강고하고, 조그마한 건물 안에 조그마한 방으로 갈려 존재하고 있는 개인들에게 "왜 연대하지 않는가?"하고 묻기에는 이들의 하루하루는 너무 신산할 뿐이다.
2-2. 진짜 가난의 얼굴은 무엇일까? 매튜 데스몬드 또한 Evicted에서 이야기하고 있고, 저자또한 책을 통해 이야기하듯, 사람들은 빈곤의 원인과 결과를 뒤바꿔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빈민들은 게을러서, 자기관리를 못해서 가난해진것이 아니고(물론 그런 경우들도 당연하게도 있겠지만...), 가난하기 때문에 혹은 가난해왔기 때문에, 무언갈 가져본것이 없기 때문에, 미래에 무언가가 나아질것이라는 희망이 없기에 게을러지고 자기관리를 못한다고 보는 게 적절할 것이다. 실제로 많은 빈민들은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의외로 근면성실하게 노동하지만 빈곤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자칫 잘못 읽으면 빈곤 포르노로 소비되기 쉬운 쪽방촌의 일상과 그 구조를 다층적으로 조망하며, 우리가 생각하는 가난의 얼굴은 그것이 아닐수도 있음을 말하고 있다.
3. 1부와, 그 뼈대를 이루는 한국일보의 시리즈 기사는 그 자체로 2018년말, 2019년 대한민국 빈곤의 현 주소를 훌륭하게 그려낸 르포다. 비록 나는 쪽방촌에 가보지 않았지만, 곳곳에 삽입된 사진과, 세세한 설명으로 인하여 상상으로나마 쪽방촌의 공간이 어떠했을지, 그곳에서 겨울과 여름을 나는 건 어떠했을지 조금이라도 상상이나마 해볼 수 있었다. 저자의 세세한 기록과, 많은 사람들에게 생경한 공간일 쪽방촌을 발로 뛰며 취재한 취재력에 찬사를 보낸다.
4. 1부는 엄밀한 자료조사와 인터뷰, 그리고 사진들과 함께 좀 더 리포트에 가까운 느낌을 준다면 2부는 저자 본인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꽤나 자세하게 담겨있는 에세이에 약간 더 가깝다고 할 수도 있겠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취재나 인터뷰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1부에 비해서는 그렇다는 말이다. 저자는 여자이자, 부산출신의 대학생으로써 남들에게 대놓고 얘기하기 힘든 자신이 살아온 빈곤의 경험에서 시작해 2019년을 살아가고 있는 현재 청년들의 주거환경과 삶이 어떠한지를 담담하게-사실 약간 비관적이게 들리기도 하고, 종종 울분에 찬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풀어내고 있다.
5. 저자는 학생들용 기숙사를 지으려다가 주변 주민들의 반대에 밀려 실패한 한양대 주변의 신 쪽방촌이라고 불리우는 사근동을 취재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최소한의 안락함을 보장받기 힘든 악성 주거공간들이 어떻게 상대적인 약자인 청년층들을 착취하고 있는지를 말한다. 삶의 유동성 - 군입대, 휴학, 방학, 교환학생, 유학, 이직 등등 - 이 상대적으로 큰 대학생 혹은 청년들의 주거 공간은 과연 "건강"한 것일까? 1부에서 본 쪽방촌의 빈민들의 주거공간이 건강하지 않듯이, 삶의 유동성 때문에, 혹은 지방에서 상경해서, 아직 보증금을 구할돈이 없어서 쪽방촌으로 들어온 젊은 사람들의 주거공간은 절대 건강하지 않다. 종종 그들이 지낼 수밖에 없는 신 쪽방촌들은 대놓고 법을 어기고 있으며, 집주인들은 임대소득이 벌금보다 더 높기에 꾸준히 불법을 저지르며 쪽방촌 임대 "사업"을 하며 자신들의 권익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는 대학교 내의 기숙사까지 반대를 하기도 한다.
5-1. 사실 혼자 원룸에 사는 나도 방을 구하러 다닐때 종종 듣는 이야기기도 했다. "이정도면 젊은 남자가 혼자 지내기에 나쁘지 않아요". "어차피 오래살거 아니잖아요? 이정도면 이 동네에서는 가장 싼 집이에요" "어차피 하루에 대부분은 나가서 일하잖아요? 잠만 자면 되지~" 같은 이야기들을 들어본 사람들 많을 것이다. 나도 방 구하러 다닐때, 집주인 또는 부동산 주인으로부터 많이 듣던 이야기기도 하다. 어떻게든 주거비를 아끼고 싶기에 나도 해가 잘 들지 않는 1층 방에서 산적이 있긴 하다. 꽤나 오래 살았지만, 그 다음 집을 찾을때는 무조건 해가 드는게 최우선이었다(...) 해 안드는 1층 방에서 살아보니 방은 꽤나 습했고, 나도 인지하지 못했지만 꽤나 우울해했던 것 같다.
6. 청년들은 아직 안정된 직업이 없는 경우가 많고, 누군가(주로 부모님)의 도움이 없이는 요즘 세상에 처음에 홀로서는 것이 마냥 쉽지만은 않다. 그렇기에 이들의 삶은 굉장히 가변적이고 유동적이지만, 네트워크 효과가 가중됨에 따라 서울같은 대도시로 모든 자원과 인프라가 집중되는 요새의 실정상 이들은 직업과 미래를 찾아 종종 (싫더라도) 서울로, 혹은 대도시로 향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모든 불이익을 감수하고, 장기적으로는 정신/육체 건강에 악영향을 줄수 있는 공간에 사는 것이 "합당"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주 청년들은 현재 그들의 삶과 직결되어있는 불합리함과 힘듦을 "인내"하고 좀 더 나은 삶에 대한 갈망을 "유예"해도 괜찮다는 말을 듣는다. 언제까지 유예해야되는걸까?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낳으면? 아니면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당연하게도 세상이 바뀌는데에는 시간이 걸리게 마련이지만, 힘든 환경에 놓여있는 이들에게 사회가 변하는 속도는 상대적으로 너무 느릴수밖에 없다. 나는 그래도 서울보다 집값이 싸고, 불법건축물이 상대적으로 적을 대전에 주로 살고 있기 때문에 덜하지만,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신 쪽방촌에 사는 젊은이들의 보다 나은 삶에 대한 열망은 구조적으로 또는 강제적으로 유예되고 있다.
6-1. 1부가 훌륭한 르포라면, 2부는 드러내기 힘든 저자의 젊은시절의 빈곤과 자기생애사적 이야기를 했다는 점에서 훌륭하다. 좋은 책이다. 추천하고 싶고, 아마 자취를 해본 경험이 있다거나, 타 지방으로 이사를 가서, 혹은 이직을 해서 방을 구하러 다녀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2부는 참 가슴에 와닿을 것이다. 나는 비록 쪽방촌만큼의 환경에 살아본 적은 없지만 옥탑방 투룸에서 남자 넷(...)이서 살았었던 더운 여름날이 2부를 읽으면서 계속 떠올랐다. 물론 내가 살던 환경은 정말 좋았다. 그렇지만 나도 그러한 환경이 지속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캠프(...)체험하듯이 살았었던 거라서 그럴지도 모른다.
7. 좋은 얘기만 했으니 살짝 아쉬운 얘기도 해야겠다. 사실 1부의 엄밀함-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매튜 데스몬드의 책이 떠오르게도 하는-에 비해 2부는 에세이 형식에 가깝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엄밀함이 떨어질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다. 그게 나쁘다는게 아니다. 어쩔수 없었던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생각하는건 기왕 이렇게 될거였다면 차라리 1부의 엄밀함을 더 밀고 나갈수 있는 책을 만들고, 2부의 청년이야기 및 신 쪽방촌의 이야기는 따로 에세이 집을 내는 것이 어떤가 하는 생각이다. 사실 2부의 이야기는 2030 젊은 세대라면 다들 방을 구하러 다니면서 접해봤을 이야기라서 익숙할테니, 기왕 자전적인 이야기를 하실꺼 아예 생애사적인 이야기를 대놓고 이야기하는 자전적 에세이를 써보심이 어떠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7-1. 아쉬웠던 점 또 한가지는 약간의 생존자편향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신 쪽방촌의 주 거주자는 청년-남성일수밖에 없는 구조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에 대한 주거환경의 이야기를 다룬것에도 분명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 개인적인 생각과 주변에서 들어본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그래도 2030 남자들은 열악한 주거환경을 얻는 대신, 약간이나마 돈을 주거비에서 절약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2030 여자라면, 2030 남자들이 방을 구하러 다닐때 생각하지 않는 많은 것들을 추가로 생각해야 한다고 알고 있다. 일례로, 나는 이전 집에 입주하고 나서도 약 몇달간 부동산+집주인이 알려준 비밀번호를 바꾸지도 않고 생활했는데(...) 이는 나의 무신경함+안전불감증의 탓도 있겠지만, 사실 집에 입주하자마자 도어록을 아예 바꿔버리기도 하는 여자들이 굉장히 많음을 생각해볼 필요도 있다.
7-2. 상대적으로 싼 1층집 대신 밖에서 보일까봐 무조건 고층을 선호한다던가, 상대적으로 비싼 오피스텔에 돈을 더 주고라도 들어간다던가, 경비원이 있는지 확인한다던가, 길거리에 가로등이 있다던가, cctv가 골목길에 설치되어있다던가, 건물 1층에 보안키가 설치되어있다던가 하는건 내가 처음 자취를 해봤던 20대초반부터 방을 구하러 다니면서 한번도 고려해보지 않았던 것들이지만... 상당수의 2030 여성들에게 이 사항들은 있으면 좋고 아니면 말고 층위의 문제가 아니라, 고려해야만 하는 것일게다. 저자 본인이 여성이며 지방에서 상경해 자취해본 경험이 꽤나 많음을 상기해볼 때 해당 이슈에 대해서 좀 더 다룰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주제가 주제이니만큼 덜 다뤘다는 생각이 드는데, 아마도 2부의 이야기를 더 따로 뺴서 자전적인 에세이가 나온다면 아마 썰보따리(...)가 무궁무진할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니까 청년-남성들에게는 신 쪽방촌에서 버텨내는 것이 문제라면, 청년-여성들에게는 버텨내는 것+본인의 안위에 대한 두려움이 따라온달까나...
8. 일독을 권한다. 추천한다. 많이들 읽어보셨으면 좋겠고, 특히 아마도 이글을 SNS 혹은 블로그에서 읽고 있을 많은 사람들은 나와 비슷하게(...) 빈곤(어디까지나 국가소득분위에서 말하는 절대적 빈곤)과 거리가 먼 분들이 많을 것이다. 책으로나마 실재하는 이 시대의 빈곤과 가난의 얼굴이 어떤지 읽어보셨으면 좋겠다. 당장 이 책을 읽는다고 뭔가 달라지진 않겠지만, 다가오는 총선에 앞서 지지하는 정당에 이야기를 할 때, 혹은 어딘가에서 생긴 가외 소득이 있어 쓸 곳이 있다면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곳에 지지를 할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8-1. 아 그리고 책이 잘 읽힌다. 이는 신문사 기자로써 단련된 저자의 글쓰기 솜씨인지, 아니면 저자 본인의 글쓰기가 원래 쉬운 것인지, 진도 안나가는 먹물학술서(...)에 질린 내가 이런 글쓰기에 반가워서 그런건지 모르지만, 순식간에 다 읽었다. 심지어 책도 그리 분량이 그리 많지도 않다. 한 200쪽쯤 되니까 후루룩 읽기 좋으실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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