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 run에 대해서 글을 쓰려다보니, 자연스럽게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쓰게 되었다. 근데 이젠 무슨 주제를 던져주건 기승전-현재하는일 얘기로 끝날 것 같긴 하다. 나도 내가 이런 재미없는 인간이 될 줄 몰랐다(…) 어느정도는 지금 하고 있는 사업이 좋게 마무리(물론 이건 내 희망이다. 회사를 하면서 항상 잘 안 될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을 버려본적은 없다.)되고 나서야 사업과 관련된 글을 쓰려 했지만 정제되지 않은 생각은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믿으며 글을 시작해본다.
창업을 준비하고 시작하던 무렵의 나는 말그대로 동네에서 혼자 달리기를 해오다 처음 대회에 나간 사람과 다름 없었다. 페이스조절이 무엇인지, 혼자 뛰는게 아니라 대회라는 분위기에서 레이스를 끝마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전혀 감도 오지 않고 그저 신이 나 있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아마도 힘든 줄도 몰랐었던 것 같다. 그저 친한 사람들과, 좋은 기술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는 생각만 했다. (그때쯤 열심히 봤던 HBO 미드 <실리콘밸리>가 큰 영향을 줬을지도 모른다) 나는 런린이처럼 – 생각해보면 나는 사업도 인생 처음이니까 창(업)린이 겠다 – 마구 페이스를 끌어올려 달렸고, 앞이나 옆에서 천천히 자신만의 페이스로 뛰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달리기를 오래 하지 않았지만, 대회를 나가건 혼자 뛸 때 건 10KM를 기준으로 했을 때 내 기분과 컨디션은 처음 1~2키로미터때에 가장 좋다. 뛰려고 나왔고, 뛰기 시작했고, 오늘은 정말 잘, 그리고 많이 뛸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드는 때다. 그러나 막상 달리기 시작하고 땀이 나고 몸이 풀리기 시작하는 3~4키로쯤이 되면 슬슬 포기하고 싶어진다. 괜히 머리 속에서 지금 당장 달리기를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가도 괜찮을 이유 오조오억개쯤 – “아 벌레가 너무 많네, 벌레 극혐”, “아니 오늘 습기 실화냐구~” 등의 참으로 사소한 이유들 말이다 – 을 생각하면서, 멍청하게 오늘 달리러 나온 나를 탓하곤 한다. 그리고 나서 5~6키로 구간쯤에 접어들면 슬슬 생각이 없어지기 시작한다. 놀랍게도 약 10분전에 하고 있던 온갖 종류의 내가 지금 당장 달리기를 그만둬도 괜찮은 오조오억개의 부정적인 생각들은 기왕 이렇게 온 거 꼭 10키로는 뛰고 만다는 생각으로 변한다. 그리고, 나는 약간 멍한 상태에서 어떻게든 10키로를 다 뛰어낸다.
놀랍게도 10키로를 다 뛰어”내고” 나면 – 그렇다 나에게 있어 모든 달리기는 거리, 시간, 속도, 코스 등등과 관계없이 아직도 “해낸다”, “해내었다”라는 견디고 버티는 행위에 가깝다 – 내 몸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말한다. 10키로만 뛴거 조금 아깝지 않아? 더 뛸수 있을거 같은데? 라면서. 아마도 거기에서 더 뛰어도 괜찮겠지만, 내 머리는 그때쯤 이성을 되찾기 때문에 보통 그보다 더 뛰지는 않는다.
창업준비기, 그리고 창업초기의 내가 10키로 대회에 처음 참가해본 런린이로써 페이스조절이고 뭐고 생각하지 않고 자기 기분대로 뛰는 사람에 가까웠다면, 3~4년차인 작년 그리고 올해의 나는 내가 달리기를 하면서 가장 싫어하는 마의 구간인 3~4키로를 달리고(혹은 달려내고만) 있는 것 같다. 10키로 달리기와 창업이 극명하게 다른 점은 10키로는 어떻게든 버티면 끝나지만, 창업은, 그리고 사업은 언제까지 어떻게 버텨내야 할지 감이 잘 안 오는 달리기를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강하다. 실제로 작년과 올해의 나는 마치 내게 있어 마의 러닝 구간인 3~4키로 째를 달릴 때의 나처럼, 주변사람들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회의적으로 “이대로 괜찮은거야?”, “야, 너 인생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거 맞아?”, “너 혼자 너무 천천히 뛰고 있는거 아냐?” 라며 꾸준히 되물어왔다. 포기해도 괜찮을 이유, 그만해도 괜찮을 이유를 오조오억개쯤 찾아내면서.
그리고 이제 만 4년이 넘어 4년반쯤이 된 내가 있다. 다행히도 요즘의 나는 그 마의 4키로 구간을 접어들어 5키로쯤을 달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포기는 아니다. 오히려 수용 또는 적극적인 “받아들임”에 가까울 것이다. 달리기를 시작하면, 하루종일 걸어만 다니던 몸이 4키로쯤 달리면서, “그래 원래 달리기는 힘든거지만, 얘는 오늘 달리기를 할건가 보다” 하고 적응하듯이, 나 또한 근래에는 “그래, 창업은 힘든 거였고, 아무도 쉽다고 얘기해주지 않았고, 생각했던것보다 오래 걸릴것이다” 라고 다시금 창업과 내가 하는일에 적응하고 있다.
이렇게 오래 걸릴지 몰랐다. 사업도, 그리고 달리기도. 처음 시작했을때는 분명 그랬다.
그러나 뛰어보기 전까지는 내가 절대 뛸 수 없을 것이라고 느꼈던 10km도 빠르건 느리건 계속 뛰기만 하면 언젠가는 끝이 나듯이, 좋던 나쁘던 이 사업도 언젠가는 끝마칠 수 있을 것이다. 처음 10km 대회에 나가 내 페이스도 모르고 오버해서 뒤에는 거의 걷다시피 들어오던 런린이였던 나는, 이제는 처음에 시작했던 페이스를 끝까지 끌고 나갈 수 있는 정도의 러너는 되었다. 러닝의 레벨업이 빠른것보다 창업가로써의 나의 레벨업이 더 빨랐으면 좋았겠지만, 아직도 미숙한 창업가인 나는 페이스조절에 종종, 아니 꽤나 자주 실패하곤 하는 것 같다. 그나마 다행인점은 초반에 오버페이스 했다는 것을 깨닫고 꾸준히 나의 페이스를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는 점일 것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느려보이고, 볼품없어 보일지더라도, 결국에 목표했던 달리기를 끝내고 나면 이대로 끝낼꺼야? 더 할수 있지 않아? 라고 자기의 체력수준을 간과하고 건방지게 물어보는 나의 몸뚱아리(…)처럼 지금 하고 있는 일과 내가 공동창업하여 여러 훌륭한 팀원들과 함께 운영하고 있는 회사에 대해서 창업의 끝자락 즘에 허세부리면서 얘기할 수 있게 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그러기위해서는 자연스럽게도 내가 러닝을 하면서 나름 배우고 있는 것들을 인생 전반적으로 끌고 들어와야만 할 것이다. 내가 남들에게 현혹되지 않는 나만의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길,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레이스를 끝마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 오조오억개의 잡생각들에 잡아먹혀 목표했던 만큼 가지 못하고 주저앉지 않길. 습하고, 비오고, 뜨거운 여름날을 견디며 계절을 달리고 또 달릴 체력을 길러 결국에는 달리기 좋은 가을날 지금까지 달리지 못했던, 혹은 달릴 엄두도 못 내었던 긴 거리를 힘차게 달릴 수 있길.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누군가 또한 자신만의 페이스로, 자신만의 거리를, 자신이 만족하는 만큼 달릴 수 있길.
건투를 빈다. 아니지, 요새 말로 존버는 승리한다.
존버 이즈 라이프 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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