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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섭, <훈의 시대>

by 박댐 2019. 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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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의 시대:우리의 몸을 지배해 온 시대의 언어들, 와이즈베리

** 해당글은 제 페이스북 계정에 2019년 1월 26일에 업로드한 글입니다. (https://www.facebook.com/daein.park.560/posts/10161316341950394)

0. 오늘의 리뷰(...) 김민섭 선생님의 <훈의시대>를 읽었다. 저번 주말, 그러니까 토요일에 읽음. 잡상 및 인상비평 위주니까 편히 읽으시길(...)

1. <대리사회>,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를 읽은 나는 아무래도 <훈의 시대>를 어느정도는 그 연장선상에서 읽어낼수밖에 없었는데... <지방시>가 대학원생이라는 애매모호한 정체성으로 살았던 한 개인의 어떤 특정 대학교에서의 삶의 기록이라고 한다면, <대리사회>는 본격적으로 사회에 나와서 학자/작가로써의 정체성을 가진채 또다시 정규직인지 비정규직인지 애매한 상황에서 주체적인 공간과 직업을 가지지 못한채 남들의 대리해서 살아가는 삶에 대한 이야기라 할 수 있겠다. <지방시>가 자전적인 에세이에 가까웠다면 <대리사회>는 좀더 르포/현장연구에 가깝다고 할 수도 있겠다. 아, <대리사회>는 김현경 선생님의 <사람,장소,환대>와 함께 읽어보시면 더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이리라 본다. 아무래도 주체성과, 공간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다보니...

2. 이번 <훈의 시대>는 김민섭 선생님이 대학원생 시절 어떤 연구를 해왔었는지 잠깐이나마 엿볼 수 잇는 계기가 되기도 했으면서(특히 1장이 그랬었다. 아무생각없이 가볍게 읽으려고 책을 폈는데 지그문트 바우만이라니...), 동시에 이미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있었던 여러가지 "훈"들을 떠올려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또한 <대리사회>에서부터 선생님은 "주체성"의 문제를 고민을 하고 계셨구나 싶기도 하더라...당연하게도 사회라는 구조 아래에서 인간이 완벽하게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일이라는 것은 아마도 불가능하겠지만, 할 수 있는 한 그 개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종류의 "압력"과 "규제"는 어떤 것이 있을까 고민하고 비평하는 일 또한 의미있는 일일 것이니... 다만, 이 책은 위에 얘기한 인간 개개인에게 행사되는 "위력"을 법령이나 규제수단이 아닌 언어, 그것도 "훈"이라는 형태로 고민해보는 책이라 할 수 있겠다.

3. 사실 1장의 논의가 주가되었다면 먹물끼(...)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 흥미로웠겠지만 그렇지는 않고... 그 뒤의 장들부터는 각각 학교, 회사, 그리고 생활환경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훈"과 "언어"들에 대한 사례수집을 통해 논의를 이어나간다. 이 책에서 특기할만한 점이라고 생각했고, 재밌다고 생각했던 점은 각 장마다 직접 관련자들과 인터뷰를 했던 내용들이 담겨있던 점이었다.

3-1. 특히, 교훈을 바꾸려고 했지만 총동문회의 반대로 이뤄내지 못했던 원주여고의 사례나, 결국 교가를 바꿔내는데 성공했던 강화여고의 사례들이 흥미로웠다. 아무렇지 않아보여도 한 집단과 사회의 언어를 바꾸는데는 굉장히 힘들다는 어떻게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를 증명하는 사례들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매일 마주치는 공간에 존재하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언어들을 바꾸는 집단행동/실험의 주체가 (주로)여성들이었으며, 그 행동을 실제로 이뤄내었거나 시도 자체가 있었다는 것 또한 특기할만 하다. 이 글을 통해 조그마한 승리의 경험/변화를 만들어보려는 시도를 만들어낸 분들께 찬사를 보낸다. 미래에 비슷한 일이 있을때 이 경험이 있는 사람과 아닌 사람들의 행동양식은 크게 달라질 것이니까... 그리고 굳이 이런 사례들을 언론에서 크게 다뤄주지 않았더라도, "그 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일들이 조금씩이나마 천천히 바뀌고 있다는 걸 알려주는 것 같았다.

3-2. 약간의 과대해석일수도 있지만, 학교의 훈과 관련된 이 책의 2장은 그 자체만으로 훌륭한 페미니즘/소수자운동/사회운동의 교보재로 쓰일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종류의 사회운동이건 간에 주류질서에 반발하고 체제를 전복(이라고 하니까 굉장히 급진적이어보이긴 하지만 여튼)하려는 집단이 필요로 하는 것은 자기자신을 주체적으로 규정할 수 있는 "언어"일테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프로불편-러들이여, 꾸준히 불편해하고 불평하시라... 일상에서 겪는 "불편"한 언어바꾸기가 그냥 예민한 사람들의 불평이 아니라 사회운동의 일환이라고 셀프-정신승리라도 하면서(...) 지금 당장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들은 예민하다고 욕먹을지 몰라도, 얼굴도 이름도 모를 후대의 많은 이들이 (아마도) 감사해할것이당...

4. 이 책에서 반복적으로 "~~하는 몸" 이라는 말들이 등장한다. 감히 추측해보건대 푸코의 유순한몸(docile body)의 담론에서부터 비롯된 서술이 아닌가 싶은데... 당연하게도 주체성과 사회의 규율을 이야기하시면서 벗어날 수 없는 푸코...책 사놓고 서문만 읽어본 그 푸코...아아 그 어려운 이름...다음권 다다음권 쯤에는 좀 더 "몸"에 대한 이야기를 기대해도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대리사회>에서 "공간"을, 이번 책에서 "언어"를 이야기하셨으니 다다음 권쯤에는 뭔가 "몸"과 관련된 이야기를...ㅎㅎㅎ

5. 책의 말미쯤에 이 사회에 막말이 너무 많다라는 이야기를 하시며 이들을 모아 책을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시는데, 이거 강추드리고 싶다(...) 나도 기억하고 있는 이 사회의 여러 막말들이 있는데, 이를테면 높은 자리까지 올라가셨던 어떤 분의 "못생긴 여자가 서비스가 좋다"라던가 아직도 정정하신 어떤 분의 "젊은 사람들이 나한테 감정이 안 좋은가봐. 당해보지도 않아놓고" 같은 발언들 말이다(...) 이런것들만 모아놓아서 분석하는 책이 나와도 좋겠다. 뭐랄까... <막말의 사회사> 같은 느낌으로다가...ㅎㅎㅎ

6. 한번 읽어보시길 추천드린다. 학술적으로 읽기에는 다소 가볍고, 그냥 편하게 에세이로만 읽기에는 묵직한, 애매모한 부분이 있다. 그렇지만 일상생활에서 "아, 이건 좀 아닌데" , "이런 말들이 요새에도 있네"라고 싶었던 순간들이 있었던 분들이라면 한번쯤 읽어보시길 추천드린다...

7. 김민섭 선생님은 감사하게도, 책이 나오고 나서 직접 저한테 개인적으로 카톡을 보내서 책이 나왔다고 홍보를 하셨다. 나도 배워야 할 것 같은 자세(...) 부디 책 많이 파셔서 조금 더 평안해지시길 빈다.

뱀발) 김민섭 선생님을 오프라인에서 만난건, 모 정당에서 대학원생 관련 실태조사같은것을 의뢰했을 때였다. 년도로 치자면 아마도 2015년쯤 되었으려나... 그 이후로 오프라인에서 뵌적은 없지만, 페북에서 간간히 사진도 보고 하고 있는데 참 안 늙으시는듯(...) 저는 그 사이에 살도 많이 찌고...늙기도 더 늙었답니다...엉엉...ㅠㅠ

훈의 시대:우리의 몸을 지배해 온 시대의 언어들, 와이즈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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