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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치형, <사람의 자리 과학의 마음에 닿다>

by 박댐 2019. 5.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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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자리: 과학의 마음에 닿다, 이음

0. 사실 이 책에 대해서 서평을 쓰려는 생각은 원래 없었다. 일단 일차적으로 대학원 때 이 책의 저자이신 전치형 선생님으로부터 참 많은 것을 배웠기 때문에 나 따위가 불경하게 어떻게 선생님이 쓰신 책에 서평을 쓰나(...) 같은 생각을 했었기 때문이고, 두번째로는 사실 선생님이 이미 여기저기 기고하신 글들 대부분을 읽어보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안 읽어봤던 글은 없었던 것 같다. 아마도 이 책의 228쪽에 있는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 종합보고서의 서론과 각 꼭지마다 추가로 쓰여진 글들을 제외하면 안 읽은 글들은 없었던 것 같다. 근데 칼럼을 하나씩 읽을 때랑은 다르게, 이렇게 모아져서 책으로 나오니까 또 느낌이 다르더라(...) 원래 조금만 읽다가 말려고 했는데, 오늘 사서 집어든 김에 다 읽었다. 세번째이자 마지막 이유로는 선생님이 작년에 한별이와 공저하여 나온 과정남의 첫 책에 추천사까지 써주신 분이기 때문이다. 추천사를 부탁드리면서도 굉장히 부끄럽고 무섭고 그랬었다(...) 선생님 그 특유의 말투로 "뭐 이런걸 이렇게 길게 써놨어...남들이 다 아는걸..." 하실까봐 무서웠었더랬다. 근데 무서웠던 그 감정과는 다르게 다행히도 좋은 추천사를 써주셨었다(...)  아아...스승의 은혜... 아, 책은 사서 읽었다. 그리고 이음 출판사와도 사실 전혀 관련이 없다(...) 나름의 관련이 있다면 에피 정기구독자인정도...? 여튼 이 글은 제가 쓰고 싶어서 그냥 쓰는 것임을 밝힙니다. 

 

0-1. 내가 과정남을 한별이와 시작했던 때는 2014년도인데, 사실 과정남을 하는데 많이 영향을 줬던 데에는 크게 말하자면 두 축이 있었다. 한 축은 당연하게도 과학사학자들과 STS학자들의 영향이 크지 않았을 수가 없다. 브루노 라투어라던가, 쉴라 자사노프라던가, 스티븐 샤핀이라던가 하는 그런 학자들 말이다. 그리고 다른 한 축은, 어찌 되었건 간에 한별이와 내가 이공계인으로의 정체성을 가지고 10대후반20초중반을 보낸 것일 게다. 우리 둘다 이공계 공부를 안한지 오래되기는 했지만, 사실 아직도 우리 인맥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공계인이고, 사회 어느 동네의 이슈보다는 이공계와 아무래도 관련된 이슈들을 빨리 전해듣고는 하니까 말이다. STS학자들의 영향을 말할 때 사실 빠질수 없는 학자는,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전치형(...) 선생님이다. 어찌 되었건 나는 내가 알고 있는 STS의 모든 것들을 어떤 형태로든 전치형 선생님을 통해서 배웠고, 대학원에 들어와서 전치형 선생님께 한학기 들은 STS survey 수업의 결과물을 전혀 업데이트 되지 않은 상태로 아직까지 써먹고 있다(...) 언젠가는 업데이트라도 좀 해야할터인데, 공부는 너무너무 하기 싫으니 정말 큰일이긴 하다.... 

 

1. 이 책에서 주로 다루고 있던 중심 주제들은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 과학기술과 사회/정치/제도는 명확히 구분할 수 있어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 받고 있다

- 결국 과학기술 또한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거기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의 현실을 보아야 한다

- 과학기술의 결과물 또한 모두에게 공평하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에서 소수자, 약자, 사회-경제적 배경이 상대적으로 낮은자들에게는 불공평하고 비대칭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   

- 다가올 미래에 대한 예측과 전망은 사실은 현재 사람들이 바라고 있는 것의 표현이며, 이를 면밀히 살펴보아 어떤 사람들이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하고 있고, 그를 통해 무엇을 얻고 있는지 보아야 한다. 

- 우리가 다가올 장밋빛 미래에 대한 예측과 전망때문에 현실세계에서 잊고 있는 것이 있지는 않을까?

- 기계와 인공지능이 사람들의 일을 대체한다고 말하고 있고, 실제로 대체되고 있기도 하지만, 그 기계와 인공지능을 움직이게 만들고, 그를 수리하고, 개발하는 것은 기계와 인공지능이 아닌 사람이 하는 일이다. 왜 우리는 그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 않는가? 

같은 류의 이야기들이 계속 계속 나온다. 

 

2. 사실 이러한 류의 이야기들을 말로 하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래서 어쩌라고?" 같은 반응을 보일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이야기들은 절대 낯선 이야기들이 아니다. 오히려 "살인은 나쁘다" 같은 도덕률과도 비슷하게 들릴지도 모르고, 굳이 이렇게까지 책을 써서 이야기할 정도로 중요한 이슈들이 아니라고 많은 이들이 느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 책은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 같은 거대한 단어들에 집중을 할 때 보이지 않는 작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 하며, 모두가 새로운 과학기술의 혁신성과 파급력을 찬양하고 있을 때, 혹시나 우리가 찬탄을 보내는 와중에 까먹어버린 것은 없는지 조심스레 되짚어 보고, 물어보는 책이다. 

 

3. 그렇기에 이 책에 실린 글들은 "파괴적"이거나 "직선적"이지 않다. 이는 출판사 입장에서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겠지만,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돈을 벌어야 하는 출판사의 입장에서는 아마 나쁠지도...) 독자인 나의 입장에서는 이제는 꽤나 익숙한 전치형 선생님의 글쓰기 방식과 말하는 방식이다. 몇가지의 이슈를 늘어놓고 "A는 B다"라고 단언하며 문제를 풀겠다고 달려드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A는 B인줄 알았는데, 그 사이에 이렇게나 작아보이지만 중요한 이슈들이 있으니 우리 다 함께 이야기 해보지 않을래?" 라고 하는 것이다. 

 

3-1. 그렇기에 이 책은 답을 주는 책이 아니며, 생각을 하게 만들고 질문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 그리고 그 생각과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 보면 이 책을 읽은 독자는 아마 주변 사람들을 붙잡고 이러저러한 이슈가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냐고 토론을 시작해보게 될런지도 모른다. 아마 거기까지 가는것조차 쉬운일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4. 세상에 나와있는 많은 책들은, 그리고 오피니언 란에 실리는 글들은 굉장히 주장이 강하다. 이 책이 주장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이 책에도 분명한 주장이 있고, 꼼꼼하게 책을 읽는 독자라면 아마 그 주장들이 여기저기 있음을 빠르게 눈치챌 것이다. 그저 내가 이 책이 한국의 여타 글과 달리 주장이 강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이 책 자체가 세상이 복잡하고 하나의 솔루션으로 사회 문제가 이렇다 저렇다, 이걸 고치면 저것이 해결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의 많은 뉴스 기사와, 책들이 지적하고 있는 사회문제는 각각이 다른데도 불구하고, 마치 그것들을 고치면 한국 사회 전체가 바뀔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는 경향이 있다. 이 책은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다. 그 대신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들어왔던 이야기들을 우리에게 상기시켜줄 뿐이다. 마치, 어렸을 적 "친구한테 그러면 안되지"라고 하는 것처럼 우리에게 "민주공화국의 동료시민들한테 그러면 안되지"라고 말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렇기에 이 책은 비록 과학과 기술과, 사회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그 무엇보다 21세기 현대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한국 시민의 마음가짐은 어때야 할까에 대한 책이기도 하다. 우리는 재빠르게 바뀌어가는 이 세상에서, 인간이 무엇인지, 그런 인간들이 모여 사는 사회는 무엇이 되어야할지, 어떻게 서로 소통하고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서 잘 배우지 않고(...) 고민해보는 시간이 의외로 부족하다. 아마 이 책이 그런 계기가 되어줄수도 있지 않을까.

 

5. 여튼, 일독을 권한다. 다만 안타까운 점은 전치형 선생님의 글이 칼럼과 기고글을 묶은 대중서의 형태로 먼저 나온 점이다. 언젠가는 전치형 선생님의 박사논문이라던지(...), 경부고속도로에 대한 논문이라던지(...) 전치형 선생님의 밑에서 공부하고 있는 친구들과 함께 연구한 결과물들이 연구서의 형태로 묶여나오기를 바래본다. 아마 그렇게 된다면 책의 뒤편에 실린 과학과 사회를 잇는 "미드필더"(솔직히 개인적으로 그다지 좋아하는 홍보문구는 아니다...) 같은 홍보문구 외에 좀 더 건조한 학술서에 대한 안내가 나오지 않을까 싶고, 만약 그렇다면 책을 사면서 조금 더 기뻤을 것 같다(...) 

 

6. 전치형 선생님과는 <세월호 교실>이라는 프로젝트를 함께 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그 때 당시 대학원에 계시던 다른 선생님과 함께 전치형 선생님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세월호를 비롯한 재난을 가르치는 수업을 열기도 하셨고, 수업시간을 온전히 다 쓰지는 못하시더라도 몇 꼭지는 꾸준히 재난과 세월호에 대해 가르치고 계시는 것 같다(물론 이는 확인이 필요하다.나도 대학원을 떠나온지 좀 된지라...) 뭐라도 해야되는거 아닌가라는 생각으로 참여했던 <세월호 교실> 프로젝트를 더이상 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세월호 이후, 세월호교실 프로젝트에 참여하겠다고 가서 답답한 맘에 반 장난식으로 "거리에 나가야 하는거 아니냐, 이렇게 자료들을 아카이브하는게 의미가 있냐" 라고 말씀을 드렸을 때, 전치형 선생님은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걸 해야지" 정도의 말씀을 해주셨던 것 같다. 그 이후로로 꾸준히 세월호, 그리고 재난과 관련된 이런저런 일들을 해오셨던 선생님이 세월호 선조위 외부집필진으로 참여하게 되셨다는 이야기를 나중에야 들었다. 밖으로 드러나는,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칭송을 받는 자리가 아니더라도 무언가를 꾸준히 계속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다시금 생각하기도 했었다. 이 책 5장의 제목은 "세월호학을 위하여"이다. 

 

7. 책이 많이 팔리길 빈다. 아마 (당연하게도) 내가 글쓰기에 참여하여 작년에 나온 과정남의 책보다는 많이 팔리겠지만, 응원의 의미로 글을 쓴다. 좀 뻔뻔하지만, 이 책과 우리가 쓴 책을 같이 읽으면(...) 도움이 더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하하하(...)

 

뱀발)지금보다도 몇년 전이지만 가끔씩 만날 일이 있을 때, "돈 벌고 싶다" 같은 말들을 농담삼아 자주 하셨던 것 같은데, 이런 글과 책을 쓰시는 분이니 아마 큰 돈을 버는 일을 향후로도 없으실꺼 같다는 생각이 좀 드는데(...) 기왕 그렇게 될거 다른 연구서들 빨리 내주시죠...? (뻔뻔) 칼럼/기고글 모음집 말고 연구서 단행본이 얼른 나오길 기대해봅니다... 

사람의 자리: 과학의 마음에 닿다, 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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